편집장의 말: 사고의 지평을 넓히며
31호 주제가 사고로 결정되고 난 후,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아…, 이거 제대로 사고 쳤네….’
퀴어 플라이에 글을 쓰면서 이렇게 대놓고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 주제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의 편집장의 말은 해당 호에 실린 글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역할을 맡아왔다. 그런데 이번 호의 주제가 ‘사고’이다 보니 필진들은 이전보다 더 다양한 글을 가져왔고, 그 덕에 나는 편집장의 말을 쓰는 데 애를 먹었다. 비유하자면, 지난 호에 썼던 편집장의 말은 큰 원 하나를 한 점으로 모은다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호의 편집장의 말은 그보다 작은 원 2개를 한 점으로 잘 모은다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내가 벌인 일은 내가 수습해야 하는 법. 나는 결국 편집장의 말을 쓰는 데 성공했고, 퀴어 플라이 31호는 잘 완성되어 이렇게 당신에게 읽히고 있다.
이 책에 실린 글은 ‘사고’라는 주제에 대해 퀴어 플라이의 필진들이 열심히 고민한 흔적들이다. 그들은 ‘사고’라는 주제를 듣고 열심히 브레인스토밍하고 이를 통해 글의 대략적인 틀을 만든다. 본인이 알고 있는 사실, 겪은 경험, 머릿속에 펼쳐진 상상의 나래 등을 한데 모아 섞고, 주물주물거리며 반죽을 만든다. 그 반죽을 틀에 끼워 넣어 워드프로세서라는 오븐에 집어넣고 구워준다. 넣어준 반죽이 부글부글 부풀어 오르면서 글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필진들이 구워낸 글들을 한데 모아서 정리하고, 홍보한다.
글 하나하나에 각자의 경험이 들어있다.
글 하나하나에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담겨있다.
글 하나하나에 각자의 생각이 녹아있다.
글 하나하나에 각자의 사고 체계가 투영되어 있다.
이렇게 각각이 가지고 있는 사고의 영역에서 재료를 하나둘씩 꺼내 요리한다. 이를 통해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어디선가 요리는 사실상 과학 실험과 같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글도 필진들이 한 사고실험의 결과물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이 문집에 실린 글은 서로 다른 사람들의 사고에서 비롯된, 각자의 개성이 톡톡 넘치는, 그러기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글들이다. 그런데도 이 글들을 이렇게 문집으로 엮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고’라는 공통 키워드, 그리고 이 문집이 ‘퀴어 플라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자라오면서 주변 사회를 통해 자신의 사고 체계를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에서 통용되는 각종 관습과 고정관념들도 머릿속으로 같이 스며들게 된다. 이러한 관념들은 정상성이라는 이름으로 무한히 펼쳐진 사고의 대지에 경계선을 긋고 영역을 나눈다. 사회는 우리에게 외친다. 너희들은 이 영역 안에서 놀아야 한다고. 경계선을 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더 나아가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라고.
이러한 정상성 중에는 비퀴어 정상성도 있다. 퀴어라는 이름으로 모인 우리들은 이 경계선을 넘는 사고를 친 사람들이다. 제한되어 있던 사고의 영역을 확장한다. 이렇게 확장된 사고를 본인이 쓴 글에 녹여낸다. 그 글들을 돌려가며 읽음으로써 사고의 지평을 넓혀나간다. 자신이 인지하지 못했던 세계를 알아간다.
우리는 이 글들을 한데 모아 ‘퀴어 플라이’라는 문집을 만들었다. 이 문집에 실린 글은 필진들이 사건의 경계선을 넘고, 탐색하고, 수행했던 기록 그 자체이다. 또한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경계 밖의 세계를 소개할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이 문집을 통해 여러분의 사고의 지평도 넓어지길 바란다. 마치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 당신이 사고를 칠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