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더라, 미웠더라
창윤:
승준이를 만나러 버스를 탔다. 승준이는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나에게 남은 유일한 절친이다. 그때는 말이지, 한국 문화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한국말도 제대로도 못 할 정도로 한국이 낯선 곳이었지만, 승준이 덕분에 생활이 편해졌다. 그런데 나랑 승준이가 왜 친해졌는지는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할 수 있겠지. 나는 그냥 외국인이고 걔는 외국에서 태어났고 계속 거기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에 친척만 있는 것이지 정체성은 나랑 별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베트남보다 한국에서 더 먼 곳에서 자라왔다. 서로 같아서, 그래서 그런지 가족 관계가 아닌 것 치고 같이 있으면 집에 있는 것처럼 편하고 서로 의지할 수 있을 정도로 친했다.
승준이 어머니가 승준이를 임신하셨을 때 가족분들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셨다. 그때는 형준 (승준이 큰 형)이 3살일 때였다. 한국의 법 덕분에 승준이 25세 되기 전에 국적 두 개 중에 고를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고마워하고 있다고 나한테 말을 했다. 물론 형준 형도 캐나다 시민 카드를 얻긴 했지만, 노력하지 않고 좋은 것을 받은 승준이를 항상 미워하신 것 같다. 그런데 캐나다 시민으로 사는 것을 너무나 싫어하던 승준이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지. 어머님께서 군대에 가야 한다는 말씀을 해도 혼자 한국에 돌아갈 욕심을 품고 살았었다. 승준이가 살던 동네가 백인 가톨릭 집단인 가족들밖에 없었기 때문에 걔한테 힘들었다. 그런 동네에서 인종차별과 사회계층차별을 당하면서 살아서 걔는 답답했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그래서 20살이 되자마자 가족을 떠나 한국으로 달려왔다.
그런 삶을 살아온 승준이는 나한테 엄청 든든한 존재였다. 내가 든든하다고 어떻게 느꼈느냐면, 승준이랑 친구 하는 3년 동안, 나한테 도움이 많이 되었고, 걔가 종종 우울증 때문에 힘들었지만, 누구보다 회복을 잘한 애였다. 그리고 내가 힘들 때 나를 위로해주고 항상 옆에 있어 주는 그런 존재라서 둘은 쉽게 뗄 수 없을 정도로 붙여 다녔다. 그래서 가끔 주변 친구들도 나랑 승준이랑 사귄다고 착각했다. 나는 승준이랑 플라토닉한 관계를 지킬 수 있도록 선을 절대 넘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다. 물론 나야 승준이한테 로맨틱한 감정이 생길 수 있지만 헤테로 남성인 승준이가 나에게 로맨틱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가을 날씨가 점점 쌀쌀해져서 창문 밖으로 보던 나는 애인을 생각했다. 핸드폰을 꺼내 우진이한테 문자를 남기고 밖으로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생각하며 미소를 짓는다.
승준:
내가 게이인 것을 알게 된 지 조금 오래된 것 같다. 고3 때, 그 당시의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가지려는 도중에 내가 여자한테 아무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그냥 내가 여자친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아무 감정 못 느끼는 줄 알았지. 그러나 풋살팀원들이랑 같이 라커룸을 쓸 때는 성적인 끌림이 느껴지더라. 캐나다는 퀴어에게 개방적임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집안에서 커밍아웃하면 큰일이 날 것을 이미 예상했지. 커밍아웃하기만 해봐, 쫓겨날 거야. 아직도 보수적인 한국으로 가는 것이 나한테 제일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한국으로 간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런데, 한국이 아무래도 내 고향이니까, 간다고 해도 부모님께 아무 의심을 받지 않고 갈 수 있었다. 부모님 옆을 떠나도 아직도 겁이 나니까 커밍아웃할 용기가 없었지. 나도 먹고살아야 하는데, 경제적인 도움을 거절할 수 없었다. 충분히 트라우마를 받고 살아왔기 때문인지 나는 아무도 안 믿고 살았다. 가족들, 특히 부모님을 절대 안 믿고, 친구 한 명도 믿을 수 없었다. 커밍아웃을 하지 않고, 친구들 앞에서 일코도 열심히 했고 아직도 열심히 헤테로인 척하고 있다. 할 때마다 끔찍하고 나한테 현타가 오지만, 나는 어쩔 수 없었고, 이 이성애자 중심적인 사회에서 커밍아웃하신 분 중에도 나같이 일코 하는 분이 있을 것 같다. 친구 중에도 창윤이가 있는데 걔는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지만 항상 커밍아웃하려다가 말았지. 대학 첫날에 OT 갔을 때도 다가와 준 사람이었고, 내가 힘들 때 항상 옆에 있어 준 사람이었다. 물론 둘이 성격이 같아서 그런지 항상 붙어 있어서 나도 창윤이한테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내가 창윤이랑 3년 동안 친구 했는데, 창윤이의 수많은 애인, 수많은 파트너, 수많은 번개를 목격했는데도 아직도 그 첫인상이 바뀌지 않은 것 같다. 다정하고, 항상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은 창윤이뿐이었다. 그때부터였지, 애인을 많이 사귀었음에도 인기남인 창윤이랑 사귀고 싶은 사람이 왜 많은지 나는 그때 깨달았다. 창윤이를 잘 모르는 사람은 걔가 애인이나 파트너를 많이 바꾸는 것을 보고 안 좋게 생각할 수 있지만, 가까이서 창윤이를 지켜보는 나는 창윤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고, 이 사실을 가끔 나만 알고 싶을 때도 있다.
그래서 나도 나 자신과 창윤이에게 약속을 했지. 서로 죽을 만큼 취했어도 성관계나 로맨틱 관계를 가지지 않도록 하는 것. 그런데 내가 그 약속을 못 지킬 것 같다. 이미 내 안에 그 약속이 깨져버린 것 같다.
우진:
창윤이의 문자를 받았을 때쯤에 나는 원룸 방에서 논문발표를 준비하고 있었다. 창윤이는 요즘 바빠서 나랑만 있더니 오늘 친구랑 술 먹다니…. 절친이라는 존재가 있어서 나는야 항상 고맙지. 창윤이는 플러팅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성격이라 그것 때문에 깨진 친구 관계가 천지였다. 그렇지만 플러팅 많은 창윤이와 연애하기로 한 이유는 창윤이가 귀엽고, 다정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플러팅을 컨트롤 못 하는 것도 창윤이 탓이 아니라 우울증 때문이라고 하더라. 친구도 많고, 활발하고 말도 많은 창윤이가 어떻게 나같이 조용한 사람이랑 사귀게 됐는지 항상 궁금했다. 취향도 다르고, 성격도 완전 다르다. 나는 창윤이를 만나는 것, 사귀는 것마저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겉으로 항상 밝고 활발한데 둘이 있을 때 진정한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보고 빠져들었지. 그래서 비밀연애 하자고 할 때 조금 두려워했다. 창윤이가 동의 못 할까 봐, 창윤이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괜히 받고 우울할까 봐 걱정했었는데 어느새 1년 기념일이 다가오고 있다. 물론 내가 창윤이랑 사귀는 것이 창피하지 않다. 나는 아직 커밍아웃할 용기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비밀연애를 해야 한다. 창윤이는 나와 달리 항상 친한 친구들이 도와달라고 하면 바로 달려가는 편이다. 나는 완전 반대지. 근데 오히려 우리가 짝이 더 잘 맞는 것 같다. 창윤이 내 윗집에 계약해서 사는데 맨날 우리 집이 더 깨끗하고 향이 더 좋다고 해서 거의 동거할 정도로 여기서 자고 생활한다. 그래서 아무리 봐도 나랑 같이 보낼 시간이 누구보다 많을 것 같아서 친구 만나러 가도 질투 날 일이 없었지. 게다가 나랑 사귀고 난 뒤 창윤이가 과제 때문에 더 바빠진 것 같고, 4학년이다 보니 전공 수업 듣느라 난리 날 정도로 정신없겠지…. 불쌍한 우리 애인…. 나도 논문 준비하지만 나는 초과 학기인 데다가 군대도 갔다 와서 시간 여유가 있지. 두 살 차이 난다고 해도 창윤이가 군대 안 가서 나랑 막학기도 같이 듣고 졸업해서 나는 조금 창피하다….
창윤:
승준이 또 늦는다. 항상 그랬듯이 약속 시각보다 30분 정도 늦을 것이지만, 나는 그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다. 늦은 것에 너무 미안해지지 말라 했지만, 걔가 항상 커피값이나 술값을 내 줘서 나는 답답하지 않았고 오히려 나한테 좋은 것이었다. 내가 저학년이었을 때 그렇지 않았던 승준이가 항상 늦기 시작한 때는 아마 군대 다녀와서부터일 것이다. 같은 학년으로 대학교에 들어왔는데 승준이 군대 갔다 오느라 지금 나보다 낮은 학년이다. 그래서 같이 듣는 강의가 줄었고, 그만큼 같이 보내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근데 자주 못 만나서 우리의 우정이 파괴되지 않도록 최대한 자주 만나기로 했다. 아무래도 나는 정신 잃을 정도로 바쁘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이 우진이 형밖에 없다. 심지어 우진이 형도 바빠서 주로 집에서 데이트했다. 물론 둘이 집돌이인 것도 있고 사귀는 것도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아무래도 집 데이트가 가장 편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첫 기념일이 다가올수록 이 관계를 점점 주변 사람들한테 알려주고 싶어진다. 물론 아직도 이성애 중심적인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 커플이 당당하게 연애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우리의 주변인들한테만 알려주기로 했다. 나는 승준이부터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카톡으로 전하긴 그렇고 자주 만나지는 못해서 적당한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오늘은 둘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날이라 나는 드디어 공개할 기회가 왔다는 마음에 일어날 때부터 설렜다. 근데 나가기 전에 갑자기 승준이한테 할 말이 있다는 톡이 왔다. 승준이 연애하는 것인가? 한국에 왔을 때부터 연애를 못 했더니 누가 내 친구의 마음을 훔쳤을까 싶어서 설레졌다.
승준:
젠장, 또 늦었다. 안암역 가는 길에 나는 엄청나게 설렜다. 드디어 내 짝남이자 절친한테 커밍아웃한다니, 내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빛의 속도로 뛰고 있었다. 내리기 전에 지하철역 출구 앞에서 나한테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첫눈에 반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항상 조심스러웠지. 너무나 자기의 성적지향을 오픈한 창윤이한테는 커밍아웃하는 것이 애초부터 쉬운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겁이 많았지. 내가 알려주면 큰일 날까 봐, 내가 알려주면 내가 아웃팅 당할까 봐. 근데 4년 지나다 보니 창윤이라는 사람은 진심으로 착한 아이였고 나한테 그런 짓을 절대 안 하는 친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내 생각을 항상 맞추는 창윤이가 언제부터 내가 게이인 것을 눈치를 챘을까 싶어서 그에게 커밍아웃하는 것이 두려웠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허그부터 갈겼다. 창윤이를 안았더니 창윤이한테 나는 냄새를 맡아버렸다. 오늘부터 그 냄새를 기억해두고 싶었다. 내가 창윤이한테 드디어 내 마음을 열어준 날.
“승준이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창윤이가 제일 맑은 표정으로 나한테 인사를 먼저 했다.
“아니 한 달도 안 지났는데 뭔 지랄이야!”
나는 부끄러운 척하면서 소리 지르며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술집으로 향했다.
술집에 들어갔다. 오늘도 새내기들이 술 먹는 것만 보였고, 술 게임 하며 지르는 소리도 들렸다. 나한테 엄청 익숙하지만 왠지 낯선 곳이다. 나는 여기 처음 들어온 것처럼 말했다.
“우와, 오늘따라 사람이 많네!”
“또 뭔 소리야, 우리 맨날 보는 술집이구먼!”
창윤이 웃으면서 나를 살짝 밀었다.
나는 왠지 이 술집을 기억에 두고 싶었다. 여기서 커밍아웃할 것이고, 또 여기서 첫사랑한테 고백할 것이다. 창윤이랑 안주와 술을 시키고 둘이 못 본 사이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고 떠들어댔다. 창윤이 복전 교수님들이 걔한테 너무하신 것도 있고, 요즘 넷플릭스에 엄청난 재미있는 드라마가 나왔는데 걔가 너무 바빠서 못 보는 것도 있다. 나는 창윤이의 모든 행동, 모든 말들에 꽂혀있었고,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술에 취하는 대신 창윤이의 입술에 취한 것 같았다. 나는 취한 채로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창유나아아아, 난 진짜 진짜 비밀이 있는데에에엥 으흑”
“뭔데 뭔데, 기절하기 전에 당장 말해봐!”
창윤이가 가장 맑은 미소로 웃었다.
“난 사실 게이야아아~, 난 고딩때부터 알게 됐어으엉”
창윤:
승준이가 나한테 커밍아웃했다. 원래 촉도 좋고 눈치도 빠른 나도 이것은 예상치 못했다. 나는 충격받아 멍때렸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보니까 승준이는 항상 의심스러웠다. 나랑 절친인데 맨날 헤남들이 하는 짓들만 해놓고 헤남이 하는 말만 하니까 나야 의심했지. 그런데 항상 자기 여자가 이랬으면 좋겠고 어쩌고저쩌고했기 때문에 의심을 하다가도 믿었지. 나는 한순간 배신감이 느껴졌다. 나는야 이 세상에 성적지향, 성 정체성에 가장 오픈되어있고 이해해 주는 친구인데 왜 나랑 친구 하는 4년 동안 아무 말도 안 했는지에 대해 배신감을 심하게 느꼈다. 걔가 나한테 커밍아웃하고 난 뒤에는 그 기억을 잃어버리고 싶다는 듯이 더 많은 술을 삼켰다. 그 후, 원래 술도 잘 못 마시는 승준이를 집까지 택시를 타고 데려다줬다.
우진:
창윤이가 친구랑 술 먹고 연락 없었더니 다음 날이 돼서야 우리 집에 들어왔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자기 짐만 싼 후 집으로 올라갔다. 물론 창윤이 집이 따로 있긴 하지만, 원래 나랑 있으면 말이 조금 많고 항상 맑은 창윤이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무래도 수상했다. 어제 승준이가 사고 쳤나? 어제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갔나? 서로 믿고 모든 것을 알려주는 창윤이에게 문제 있을 때는 나한테 꼭 알려달라고 했는데, 오늘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버린 것을 보고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졸업 준비 중이라 할 일도 많았는데 종일 창윤 생각만 하니 집중이 하나도 안 됐다. 저녁 시간 될 때쯤에 애인 방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자마자 창윤이가 침대에서 가만히 누워서 멍때리고 있는 것을 봤다. 옆에서 누워서 애인을 안았다. 안기는 순간 창윤이는 진짜 크게 끝없이 울어버렸다. 안 좋은 일이 있는 것을 이미 예상했지만, 그래도 놀랐다. 원래 누구보다 멘탈 좋은 창윤이가 울었다고? 나는 아무 말도 안 하면서 창윤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눈물이 그칠 때쯤에 나는 애인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을 걸었다.
“윤아, 무슨 일 있어? 괜찮아?”
“형, 우진 형, 내가 사고 쳤어도, 형은 날 사랑하지?”
“윤아, 걱정 안 하고 그냥 나한테 말해줘! 나는 무슨 일 있어도 계속 네 곁에 있을 테니까”
승준: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제 술을 많이 마셨는지 필름이 끊겼고 아무 기억이 없었다. 원래 과음을 잘 안 하는데 어제 커밍아웃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꺼내놓았으니 과음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담배를 꺼내놓고 피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건물 방 안에선 금연인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연기 검출기도 잘 안 되어있는데 집주인이 뭐라 하겠어? 그리고 내가 이 방에서 쫓겨나도 방 찾는 것은 금방이니까 나야 신경을 안 썼지. 우리 가족도 부잣집이고 우리 친형도 대기업 다니는데 내게 걱정 따위는 없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창윤이가 나한테 아무 연락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중간고사 기간이긴 한데 걔 성격이 원래 친절하기도 하고 내가 취해서 집까지 데려다줬으면 아무 연락 없을 리가 없는데…. 에라 모르겠다. 나도 중간고사니까 공부나 해야지….
일주일이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오늘은 나랑 창윤이가 겹강인 과목 시험을 보는 날이다. 시험공부 하느라 아무 연락 안 받았더니 창윤이 지금까지 연락 없는 것을 까먹었다. 내가 커밍아웃했다고 배신감을 느껴서 날 싫어하는 것이 아니겠지? 아니야, 아닐 거야! 창윤이는 그럴 성격 아니고, 배신감 느껴 멀어지고 싶어도 말 한마디라도 하고 가는 성격인데….
시험 보러 가기 전에 전화를 걸었다. 부재중이었다. 한 번 더 시도했더니 똑같은 소리였다. 뚜뚜뚜…. 창윤이가 내 전화를 거절했다. 바쁜가? 시험이랑 과제 많은데 안 받을 수 있지. 그냥 오늘 시험 보고 나서 만나서 이야기해야겠다.
조교님이 신분증을 다 확인하신 후에 시험장에 들어갔다. 창윤이가 맨 앞 책상에 앉아 있었다. 우리 학교 강의실이 원래 큰 편이어서 내가 앞으로 가서 인사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뒷자리에서 앉아 뒤에서 공부하는 창윤이 모습을 바라보면서 혼자 미소 지었다.
시험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전공시험이다 보니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긴 했는데도 내가 잘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시험장을 나갈 때 창윤이에게 자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창윤아! 나랑 점심 같이 먹자고!” 목소리 높여 창윤이를 불렀다.
창윤이는 뒤돌고 나를 살짝 보더니, 당황해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창윤이가 날 피하고 있었다. 내 전화, 내 연락을 안 받은 이유는 창윤이가 나를 피하고 싶어서였다. 화가 나서 창윤이를 향해서 뛰었다. 손을 잡으며 소리 질렀다.
“박창윤! 너 나 무시해? 내가 커밍아웃해서 네가 날 그렇게 싫냐고!”
“아니. 승준아, 미안한데 우리 떨어지자. 다시는 만나지 말고 친구도 하지 말자.”
창윤이가 나를 모르는 사람처럼 대했다.
“왜?”
나는 몹시 물어봤다.
“너…, 말하지도 못할 사고 쳤어, 승준아, 그냥 내가 그 사고 뒤에는 너를 더 이상 보질 못할 것 같아.”
나는 그때 가만히 생각해봤다. 그날 내 기억에 남은 것들은 창윤이의 냄새, 그 술집의 낯설면서 익숙한 장면이었을 뿐이다.
“뭐 했는데?”
화를 내면서 질문을 던졌다.
“승준아, 그날 네가 날 강간했어! 너 날 강간했다고! 이제 만족해?”
그 순간에 내 주변 모든 것이 멈췄다. 창윤이에게 손을 내밀며 창윤이가 앞으로 가는 것을 뒤에서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창윤:
승준이가 날 강간했다. 내가 걔한테 배신감을 느껴 가장 취약할 때 나를 강간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버렸다. 영원히 승준이 옆에 있을 줄 알았는데, 걔랑 절친이라고 생각했는데, 말도 안 되는 그런 일이 일어나버렸다. 걔가 그랬을 때 난 가로막으려고 했지. 근데 승준이가 원래 나보다 힘이 세니까 내가 막으려고 해도 실패했다.
나는 도저히 걔를 고소하지 못할 것 같다. 이미 우울증에 빠진 사람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걔한테 성범죄자라는 명패를 주는 짓을 도저히 못 하겠다. 그래서 겁쟁이처럼 행동했지. 나는 그냥 걔를 완전히 내 삶에서 잘라버리기로 했다. 우진이 형도 내 의견을 들어주고 동의해줬다. 나는 우리 애인이 그런 생각을 하는지 조차 생각 못 해봤다. 애인은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 한남처럼 키워졌을텐데 한남이 되지 않은 것이 너무 고마웠다. 나는 우진이 형이 그 소식을 들으면 날 찰 거라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우진이 형이 나한테 내가 더 소중하다고, 앞으로 나를 무조건 지켜준다고 했다. 우진이 형이 승준이를 뼛속까지 싫어하는 것을 아는데 내가 고소 안 하는 것도 존중해줬다.
나는 승준이랑 연을 끊어버렸다. 전화번호를 차단하고, SNS까지 다 차단해버렸다. 이제 그 얼굴만 보면 안 좋은 기억만 떠오르려 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 상처가 조금 더 나아진다면 우리가 다시 연결되겠지만, 그때가 언제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승준:
나는 창윤이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머릿속이 엉망인 상태였다. 난 내가 한 짓을 믿을 수 없었다. 화장실 문을 닫고 침실로 가는 길에 나는 창윤이한테 한 짓을 다시 생각해봤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성폭행을 당했으면 난 자살했을 것 같다. 인간이 믿는 사람한테 말도 안 되는 짓을 당했으면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을 돌려서 내가 잘못한 것을 고치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창윤이를 강간했다. 아무래도 내가 그 더러운 짓을 해버린 것 같다. 오늘의 두 번째 담배갑을 꺼내 피웠다. 숨을 쉬기 좀 어려운 것 같다. 담배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스트레스 때문에 가슴이 무거워진 것 같다. 창윤이가 나를 고소하지 않을 것이기에 내 가슴이 더 무거워졌다. 차라리 창윤이가 나를 고소하고 감방으로 보내버렸으면 내 마음이 덜 아플 텐데. 창윤이는 아직도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창문을 닫고 다시 침대로 가서 여러 생각에 갇혔다. 생각해보니 내가 가진 어떤 고통보다 내가 창윤이한테 한 짓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담배를 하나 더 꺼내 침대에 누워서 핀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당했던 트라우마들이 떠오른다. 나를 때리고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게 했던 부모님들, 왜 아직도 그분들을 존경해야 하고, 그분들이 우리를 걱정한다고 생각해야 하는지 항상 궁금해진다. 한국문화에 있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항상 이해 안 갔다. 가족이라는 것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나는 항상 궁금했지. 나에게 가족의 정의는 항상 나를 생각해주고 항상 나한테 잘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 사람들이다. 나를 낳은 사람이라고 무조건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항상 우리 부모님을 무서워했다. 가톨릭 집안이라 그런지 내가 만약에 아웃팅 당하거나 커밍아웃하면 집에서 쫓겨나게 될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지금은 가족이랑 사는 것이 아니지만, 내가 커밍아웃하면 경제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게 늘어나는 것도 있다. 그래서 내가 창윤이랑 친했어도 커밍아웃하는 것이 두려웠지.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보니까 내가 혼자서 일해서 먹고살 수 있다. 아무래도 좋은 대학 다녔으니까 어디 가도 취직 잘 되겠지. 부모님 때문에 받은 고통은 부모님이랑 떨어져 시간을 보내면 나아지겠지. 아무래도 죽을 때까지 남아있을 상처보다 덜 아프겠다.
담배를 하나 더 꺼냈다.
아, 가족분들. 우리 친형도 있지. 내가 한국에 들어오고 나선 다시 만나지 못했다. 물론 나한테 연락할 생각 없었고, 나는 아무래도 형보다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자식이 아니다 보니 내가 그 사람을 만날 일도 없었다. 그 사람이 나한테만 나쁜 사람이 아니었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휴학해버리고 미성년자분들이랑 썸을 타서 협의 없이 성관계도 가지고 마약까지 하는 친형인데 내가 어떻게 잊겠어? 그때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랑 성관계를 가졌을 때 그 장면을 몰래 녹화해서 그것을 야동으로 보는 더러운 사람이었다. 그때 그 영상을 찍는 것으로 친형이 나한테 트라우마 줬지. 유교적인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그때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 뒤돌아보니 다 지난 일이지. 지금 대기업에 잘 다니고 있는 친형은 원하는 것을 다 가지고 부모님 응원까지 받는 사람인데 내가 뭐라 할 수 있겠어?
벌써 한 갑을 다 태워버렸다.
창윤이 생각이 난다. 내 첫사랑이자, 내 절친이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나한테 엄청 착하고 다정하게 대해준 친구였다. 내 생각이 틀려도 짜증 내지 않고 올바른 것을 가르쳐주는 그런 친구였다. 그렇지만 나한테 항상 고마워해 하는 이유는 내가 물질적으로 도와줬기 때문이랬다. 그런데 눈치 빠른 창윤이가 모르는 것도 있다. 내가 한국에 와서도 불구하고 캐나다에서 가진 우울증 때문에 죽으려고 했는데, 내가 아직도 살아있는 건 창윤이 때문이었다. 나는 첫눈에 반했지, 그 활발하고 맑은 성격인 사람을 누가 싫어하겠어? 그런데 친구 하는 4년 동안 아무 말 안 하는 이유도 따로 있었지. 내가 이 소중하고 나를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을 놓치기 싫어서 차라리 친구로 지내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아 담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군대에 대한 고통도 생각해봤다. 신체검사 때 내가 우울하지 않은 척을 해서 1급이 나와 현역으로 군대 갔었지. 다시 생각해보니까 그 당시에 내 정신건강은 최악이었고 신체 건강도 최악이 되어버렸다. 선임한테 맞았고 동기랑 후임한테 왕따를 당했다는 것을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않았다. 왜냐? 내가 혼자서 참을 수 있었기 때문에 괜히 부모나 창윤이한테 알려주기 싫었던 것이지. 창윤이 걱정할까 봐, 창윤이 나 때문에 공부 잘 안 될까 봐, 내가 혼자 참아왔다. 그런데도 생각하면 내가 창윤이한테 준 고통보다 나을 수도 있다.
담배가 한 대 남았다.
그때 갑자기 내 머리에 남아있는 생각이 없어져 버렸다. 인생에 생각할 것이 그렇게 적다니…. 내가 어떤 사람인가 싶더라…. 나에게 지금 중요한 존재는 창윤이일 뿐이다. 심지어 앞으로 내가 졸업해서 뭘 할건지 도저히 신경을 쓸 수 없었고 내가 지금 하는 것들도 중요하지 않았다. 창윤이는 고소 안 하기로 한 것이 내가 앞으로 갈 길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창윤이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조차도 못 했는데…, 창윤이처럼 책도 출판한다는 꿈도 없었는데…. 내가 아직까지 살아있는 이유는 전부 창윤이었다.
담배 때문에 내 방에 안개가 껴버렸다. 앞이 잘 보이는데 자각몽인가 싶더라.
자각몽이면 좋겠는데…
눈이 감긴다…
이 꿈에서 영원히 살래…….
우진:
요즘 창윤이가 그렇게 좋아 보이더라. 종강을 이미 했으니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지내니까 그렇나 보다. 나도 논문발표까지 다 끝나서 둘이 요즘 잘 놀고 있다. 창윤이는 들어야 하는 학점을 다 채웠고 졸업 논문만 남겨두고 있었다. 내가 초과학기를 한번 경험해보고 졸업해서 우리 창윤이를 부러워하지만, 우리 애인이 너무 잘하니까 나야 괜찮지. 나는 역시 맑고 귀여운 사람을 좋아하더라. 그런데 창윤이에게 다른 면이 있는 것도 엄청 좋다. 사람들 앞에서는 밝지만, 나한테만은 진심으로 말하고 우울해질 수 있는 것 때문에 창윤이에게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그리고 종강한 창윤이도 좋더라. 원래 청소하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라는데 나 대신 우리 집을 다 청소해주는 것도 애인의 이득인가?
“쨔기! 핸드폰 갖다줘! 전화 온 거 같은데!?”
“이 게으른 자식! 일어나서 해!”
잔소리하는 척하면서 창윤이의 핸드폰을 갖다줬다. 전화 받는 애인을 안으면서 우리 남친한테 나는 좋은 냄새를 죽도록 맡으려고 한다. 창윤이가 나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전화를 받자마자 표정이 달라진 애인이 갑자기 일어났다. 급하게 나갈 준비를 하길래 아무것도 못 들은 나도 빨리 준비하고 차 꺼내려고 나갔다. 표정을 보니 안 좋은 일이 일어났나 보다. 창윤이 학교 근처의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그 말 그대로 달려갔다. 도착하자마자 창윤이가 숨을 헐떡이며 안으로 뛰어갔다. 나는 차 안에서 떨면서 창윤이를 기다렸다. 누가 아프나? 다친 건가? 생각보다 빨리 차로 돌아오는 창윤이가 저 멀리 보였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 보여 걱정이 되었다. 무슨 일이지?
창윤:
그날은 화요일이었다.
베트남 문화에서는 사람이 죽은 지 49일 되면 첫 번째 묘지 청소를 하러 가야 한다. 그래서 오늘 난 휴일을 가지고 승준이를 보러 갔다. 그 사건 뒤엔 승준이를 보기 싫었지만, 승준이가 죽는 것을 바란 건 아니었다. 심지어 내가 승준이를 고소하지 않은 것도 승준이가 계속 살았으면 해서였다. 걔는 담배 연기 때문에 죽었다. 그날은 화요일이었다. 심지어 걔가 죽은 것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 나는 마음이 조금 아팠다. 집주인이 월세를 받으러 가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나는 왜 이렇게 무책임한 것인가? 나는 분명히 승준이가 자살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서도 걔를 안 봐주었고, 그것은 내 탓이었다. 세상은 왜 이렇게 잔인한 것인가? 걔가 비상 연락망을 나로 설정한 것도 잔인했다. 걔 가족들도 잔인했다. 나도 잔인했다. 걔는 이 세상의 모든 잔인함을 당하고 죽었다. 나는 승준이 묘지 앞에 둔 사진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걔 가족들은 걔가 죽은 것을 알게 된 후에도 신경을 하나도 안 썼고 걔 장례식도 나랑 우진이 형이 같이 차렸다. 장례식 안 차린 가족들은 심지어 걔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승준이랑 친한 애들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엄청 짧고 슬픈 장례식을 보냈다.
난 승준이를 미워했다. 난 승준이를 애정했다. 난 승준이한테 느끼는 감정이 뭔지 모르겠다. 난 당연히 걔를 좋아한 적이 있었지. 엄청 옛날에. 그런데 걔가 그때 일반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절대 우정과 애정 그 선을 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으니까 걔에게 아무것도 안 했지. 그 선을 넘었던 승준이를 엄청나게 미워했다. 나는 승준이가 나한테 보낸 그 많은 시간 동안 커밍아웃 안 하는 것이 미웠고 내 앞에서 자신의 진짜 감정을 안 보여주는 것도 미웠다. 근데 난 승준이를 애정했다. 나는 다정한 승준이가 그렇게 좋더라. 나는 내 옆에 항상 있던 승준이가 그렇게 좋더라…. 난 승준이를 보고 싶다.
…
우진:
창윤이 졸업하고 나서 나랑 캐나다로 이사하기로 했다. 나는 우리 회사 캐나다 지점에서 매니저를 맡게 되어 캐나다로 무사히 이사했고 창윤이는 베트남에 잠깐 들렀다가 나 따라 캐나다로 같이 갔다. 캐나다는 우리가 항상 꿈꿔 왔던 우리만의 천국이었다. 처음 왔을 때는 우리 둘 다 고생했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했고 문화 차이 때문에 완전히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캐나다는 승준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어서 창윤이는 아무거나 볼 때마다 항상 승준이가 생각나서 정신이 불안정했다. 왜냐하면, 항상 승준이의 죽음은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니까…. 솔직히 캐나다가 승준이 고향이다 보니 승준이의 유골도 여기서 제대로 묻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서 창윤이 승준이를 데리고 왔지. 그리고 승준이를 제대로 묻은 후 형식적으로 편지를 통해 승준이의 구주소로 유골 묻은 곳을 승준이의 부모님에게 알려드렸다. 물론 항상 답장 없을 것을 알긴 했는데…. 나는 승준이 부모님이 너무나 잔인하신 부모님인 것 같다. 밖에서 집안일을 뭐라 할 순 없지만, 아무래도 자식인데 죽을 때 아무것도 안 했고 자기 자식을 어디 묻었는지도 관심 하나도 없으신 것은 진짜 아닌 것 같다.
창윤이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승준에 관한 소설을 쓰고 출판하게 되었지. 나는 창윤이가 완전히 나아졌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한국 떠났을 때보다 잘살고 있다고 믿는다. 창윤이가 승준이를 완전히 잊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창윤이가 자기가 승준이를 죽였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죽인 것도 아니고, 창윤이도 상처받은 쪽이었는데 무엇을 할 수 있었겠어? 그런 죄책감에서 벗어나야 창윤이의 마음이 덜 무거워질 것 같다.
나는 회사에서 팀장이 되어 창윤이에게 프러포즈했고 이제 새로운 집으로 이사한다. 캐나다에서 우리가 부부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한국에 있으면 절대 안 될 일을 해냈지. 내가 드디어 창윤이의 남편이 된 것이다. 나는 여전히 이해 안 되는 것이 있더라. 승준이 왜 여기를 떠났는지, 왜 한국으로 갔었는지 진짜 궁금했다. 우리한테 천국인 캐나다에서 왜 떠났을까? 그런데도 창윤이가 여기서 마음 편히 먹고 영원히 잘 쉬고 갔으면 좋겠다.
끝.
보내지지 않은 메시지:
창윤아, 미안해, 난 너한테 잘못한 것을 영원히 나아질 수 없는 것을 알아. 내가 용서를 바라는 것도 아닌데 나 한번 봐주면 안 돼? 창윤아 난 너 사랑해. 너 사랑하니까 이제 놔줄게. 이제 난 이 세상을 떠나버릴 거 같고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 행복하게 살아 줘. 사랑해.
영원히 전해지지 못할 메시지:
승준아, 5년 됐어. 넌 내 곁에 5년을 떠나버렸어. 오늘따라 너 보고 싶더라. 내가 쓴 책이 출판됐다! 네가 읽고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 네가 책 좋아하는 것 잘 알아! 맨날 여기 와서 내가 읽어줄게 한 장씩! 거기서 잘 있어! 승준아…, 보고 싶어…. 언제 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