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영역

세하
May 6, 2022

말이랑 키스해본 적 있어? 기분이 엄청 좋을 거야, 말은 입술도 두껍고 묵직해서 온 숨을 막아버리고도 남을 거야. 자 어서.

지연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의 머리를 나에게 들이민다. 커다란 콧구멍에서는 뜨거운 김이 펄펄 난다. 얼굴에 습하게 다가오는 기운에 눈살을 찌푸리며 단단한 근육질의 가슴에 손바닥을 붙이고 온 힘을 다해 밀어내도 점점 공기는 뜨거워지고 이제 조금만 있으면 코와 입이 온통 뜨끈하고 말캉하고 축축한 것에 뒤덮여 산소, 산소가 부족하고 옆에서 지연은 이를 드러내며 웃고 발버둥을 쳐도 내 얼굴을 핥고 빨아들이는 묵직한 감각에 더 이상 팔에는 힘이 빠져버리고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은은하게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보니 해가 뜬지 한참이나 지난 시각. 마른세수를 하며, 현실로 돌아와야지, 그래, 지연은 그의 수화기 너머로만 들리는 목소리, 그의 사진 너머로만 보이는 얼굴이지,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앞으로 마주칠 일도 없는…….

화장실에 갔다가 칫솔꽂이에 꽂힌 면도기를 보고 문득 안도감을 느낀다. 하민이 두고 간 것이다. 혼자 사는 방에 남의 물건이 있다는 게 이토록 편안한 일이라니. 며칠 전 아침에도 하민은 이걸 썼겠지. 꿈결인 듯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나는 출근하는 하민에게 인사를 했다. 잠깐 졸린 눈을 감았다 뜬 사이 하민은 코트에 마스크까지 다 챙겨 입고는 내 어깨를 흔들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이불을 걷어차고 안겨들었고, 그는 웃으며 마스크를 내리고 입을 맞춰 주었다. 잠옷 차림으로 안기는 아이를 보듯이. 머릿결을 쓰다듬는 손길을 마지막으로 언제 잠이 들었는지, 어디까지가 꿈이었는지 경계는 다시 흐려지고 화장실의 면도기만이 남아있었다.

겨울방학이다. 하민은 겨울에도 매일 출근을 하지만 나는 학교 수업이 없다는 이유로 온종일 늘어져 있다. 종일 낮잠을 자며 꿈속에서 헤매다 보면 꿈과 현실의 경계조차 흐릿해진다. 오늘은 조금 더 맑은 정신으로 보내야지, 하는 하찮은 다짐을 하면서도 잠에서 깨는 순간 핸드폰을 켜고 SNS를 들여다보게 된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하민의 계정을 보는 것이다. 새로운 소식은 없다. 여전히 지연의 강아지가 피드 맨 위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코를 찌푸린다. 개는 잘못이 없지. 하지만 그 사진으로부터 일련의 불쾌한 연상 작용이 밀려드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나는 강아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신경질적으로 피드를 내린다. 하지만, 하지만……. 요즘은 지연을 생각하는 것보다 지연의 강아지를 많이 생각한다는 하민의 말이 떠오른다.

지연은 하민의 여자친구다. 그들은 5년이 넘도록 사귀고 있다. 겉보기로는 평범한 커플일 것이다. 여성인 지연과 겉보기로는 남성인 하민. 겉보기로 여성인 나와 하민의 관계는 겉보기로는 평범한 바람이겠지. 지연이 만나곤 하는 이런저런 남성 파트너들도 마찬가지겠지. 폴리아모리, 트랜스젠더, 팬섹슈얼 같은 단어들을 모르면 그렇게 보일 것이다. 그런 단어들을 아는 사람에게는 달라 보일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5년 된 커플의 연애는 순탄하기만 한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하민이 지연과 곧 깨질 거로 생각하고, 내심 기대도 했었다. 하지만 지연이 강아지를 입양하면서부터 다시 안정적으로 된 것 같다. 같이 무언가를 책임진다는 것은 관계의 문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지 않게 한다는 하민의 말을 떠올린다. 수면 위로 끌어올리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냥 묻어둔다는 뜻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조용히 있었다.

하민은 지연보다는 지연의 강아지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그가 보기에는 지연도 하민보다 강아지를 더 사랑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하민은 가방에 늘 강아지 간식을 챙겨 다니고, 지연은 하민을 애완인이라고, 강아지를 반려자라고 부른다. 지연의 호칭들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하민을 애완인보다 나은 것으로 여기는가, 하면 그건 잘 모르겠다.

하민이 나를 향해 네발로 기어온다. 그를 기쁘게 해 주고 싶다. 내 곁에 남게 하고 싶다. 나는 하민의 가방을 뒤적여 상자에 든 강아지 간식을 꺼낸다. 자, 하민아! 내가 간식을 쥔 손을 하민에게 내밀자 하민은 킁킁거리며 다가오다가, 갑자기 귀를 쫑긋 세우며 고개를 돌린다. 나도 따라 고개를 돌려 보니 저 멀리서 지연이 손을 흔들며 하민을 부르고 있다. 하민은 빠른 네 발로 지연의 품으로 달려간다. 꼬리를 흔들며 지연의 얼굴을 핥는 하민은 어느새 온몸이 연갈색의 곱실거리는 털로 뒤덮여 있다.

잠깐의 잠에서 깨니 벌써 오후 시간이 되어 있다. 나는 비몽사몽간에 하민에게 카톡을 한다.

네가 개가 되는 꿈을 꿨어.

멍 때리며 유투브를 보다 보니 삼십 분쯤 뒤에 답장이 온다.

살ㄹ려주ㅕ

왜? 일이 많아?

오늘은 집에 가고 싶은데 잠들었다가는 스물네 시간 뒤에 깰 것 같아서 무서워…

한숨을 쉰다. 하민은 출근은 매일 하지만, 퇴근은 매일 하지 못한다. 어제도 사무실에서 밤을 새운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다가 가끔 온종일 연락이 안 되는 날이 있으면 과로하다 못해 몇십 시간을 뻗어서 깨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럴 때면 하민이 너무 걱정된다. 이러다가 어느 날은 영영 깨어나지 못할까 봐 두렵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다시 답장을 보낸다.

깨워줄까?

세하 옆에서 자도 돼?

그럼 퇴근하고 우리 집 와.

요즘에는 하민이 이렇게 우리 집에서 자는 일이 잦다. 지연을 보는 것보다 나를 자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배덕감이 묻어나는 뿌듯함을 느낀다. 물론 지연의 집보다 우리 집이 하민에게 가깝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지연이 나만큼 하민에게 잘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붙는다. 하민을 더 사랑하는 건 나야. 하민을 깨워주는 것도, 재워주는 것도, 예뻐해 주는 것도 나라고. 이 방은 내 공간만이 아니라, 하민과 나의 공간. 하민과 나만의 방…

침대에 누워 있다 보니 어느새 내 옆에는 하민이 있다. 우리만의 공간을 더 넓히자. 벽장을 열어서 그 안쪽의 공간까지 확장하여 우리의 방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벽장의 뒤쪽이었던 벽이 창호지 붙은 미닫이문으로 되어 있다. 문을 열어보니 건너편에는 하민의 부모님이 보인다. 나는 화들짝 놀란다. 이러면 우리만의 방이 아니게 되는데. 다급한 마음에 창호지로 된 문을 닫지만, 어느새 문은 투명해져 있다. 문을 다시 닫고 그 위에 문을 더 닫고 벽장문까지 닫아보지만, 이제는 아무리 닫아도 우리의 공간이 뚫려 있다. 점점 문을 통해 사람들이 몰려들고 하민의 가족들이 몰려들고 우리에게 무언의 질문을 한다. 얘는 누구야? 얘랑 살아? 지연이는? 얘랑 뭐 하고 있었던 거야?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나는 변명을 해보려고 한다. 아니 저는 그런 게 아니고…. 그런데 설명할 것이 너무 많다. 폴리아모리가 뭔지, 왜 하민은 나랑 있어야만 하는지, 하민의 가방에 달린 분홍색 하늘색 하얀색의 뱃지가 뭘 의미하는지…


다시 잠에서 깨어보니 하민은 옆에 없다. 이제는 밖이 어두워지고 있다. 온종일 잠만 잤다는 사실에 암울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어차피 하민과 함께 하지 않는 시간에 깨어 있다는 것은 괴롭다. 하민에게, 네가 올 때까지 자고 있을 테니까 알아서 문 따고 들어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다시 눕는다.

하민은 겉보기로 남성이고, 나는 겉보기로 여성이고, 겉보기로는 우리는 전혀 퀴어한 관계가 아니다. 팬섹슈얼이나 트랜스젠더 같은 단어들을 모르면 그렇다. 하민과 지연의 관계도 겉보기로는 평범한 헤테로 커플이었지만, 원래도 폴리아모리를 했다. 지연은 다른 남성 파트너들을 만났고, 하민도 남성 파트너들을 종종 사귀곤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하민은 자신이 팬섹슈얼이라서, 지연은 여성이고 자신은 남성을 만나고 싶을 때도 있어서 다만 그런 이유로 폴리아모리를 하는 것일 거로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고추가 없다.

하민이 저번에는 내 옆에 누워서는, 만약 세하에게 고추도 질도 있었다면 내가 독점 연애를 할 수도 있을까? 하는 상상을 말해주었다. 나는 단번에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민에게 폴리아모리는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하민의 퀴어함 중 하나이고, 팬섹슈얼은 긍정하면서 폴리아모리는 부정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하민이 나와 독점 연애를 할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는 것에 나는 마음이 설레었다. 나에게는 폴리아모리가 정체성이 아니고, 독점 연애는 꿈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고추를 가지고 싶다. 내가 남성인지, 남성이 되고 싶은지, 논바이너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고추가 없다는 것에 디스포리아를 느끼기는 한다. 하민은 어떤 디스포리아를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민도 자신을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하고 있다. 나는 종종 스트랩온 딜도를 달고 섹스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행위를 했을 때는 성감이 없다. 진짜 고추를 달고 하민과 섹스를 하기도 하지만, 그건 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정작 깨어 있는 상태로 하는 섹스는 주로 하민이 ‘남자 역할’을 하고 내가 ‘여자 역할’을 하는 섹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트랜스젠더라고 해서, 우리가 팬섹슈얼이라고 해서 우리의 관계가 퀴어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것은 다 사고의 영역이지 않을까? 그런 것은 다 꿈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지연은 나를 싫어한다. 나를 만나본 적도 없지만 나를 싫어한다. 내가 ‘여성’이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까지 하민의 남성 파트너들은 이렇게 미워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 이건 나와 하민의 관계를 더 퀴어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덜 퀴어하게 만드는 것일까? 하민의 폴리아모리로서의 정체성을 찾아줬다. 퀴어하다. 겉보기로는 이성애로 패싱 되어서 질투를 받는다. 퀴어하지 않다. 우리는 둘 다 트랜스젠더이고 그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퀴어하다. 나는 하민을 독점하고 싶어 한다. 퀴어하지 않다.

지연은 퀴어한가? 트랜스젠더를 만나고 있다. 퀴어하다. 폴리아모리 관계를 한다. 퀴어한가? 하민과 결혼하고 싶어 하고 아이를 낳고 싶어 한다. 하민은 이 사실을 두려워한다. 물론 나도 두려워한다. 하민이 정상적인 가정에 편입되면 나와의 관계를 이어가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하민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 길을 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를 만나지만 지연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처럼. 지연이 하민을 예뻐해 주지 않는데도 헤어지지 않는 것처럼. 지연과 함께 강아지를 키우며 안정적인 관계로 돌아간 것처럼. 함께 아이를 책임진다는 것은 정말 관계의 모든 문제를 수면 밑으로 끌어내리는 계기가 될 것 같다. 하민의 퀴어함까지. 그런 면에서 나는 하민에게 남은 퀴어함의 자국이다. 그런 것은 지워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하민과의 관계가 퀴어하기를 원하는가?

나는 아이를 낳기 싫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상상만 해도 디스포리아가 올라온다. 내가 출산을 한다, 육아를 한다, 그리고 엄마라고 불린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기만 하다. 그러나 나는 점점 배가 불러온다. 부르다 못해 어느새 나는 누워서 온몸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고 있다. 방은 어두컴컴하고 오직 붉은 빛, 아래쪽이 찢어지는, 피, 이물감, 그러다가 몸에서 무언가가 밀려 나오면서 왠지 시원한 느낌이 든다. 거대한 핏덩어리를 닦아내 본다. 내 몸에서 나온 것은 수염이 난 성인 남성이다. 아들이다. 하민의 아들을 낳았으니 나는 인정받을 것이다. 정상적인 가족을 이룰 수가 있다. 하민의 부모님에게도 인정받을 것이다. 이제 지연보다는 내가 중요한, 더 정상적인 관계가 될 것이다. 하민은 이제 나의 것이다. 나는 아들을 안고, 문득 중요한 생각이 나서 내 방 화장실로 가서 하민이 남기고 간 면도기를 가져온다. 그리고 채 피가 마르지도 않은 아들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면도해 준다. 내 소중한 아들. 하민이랑 똑 닮았네.


눈을 다시 떠보니 한밤중이다. 눈을 끔뻑이며 핸드폰 화면을 켜 보니 새벽 세 시다. 온다던 하민은 옆에 없다. 사무실에서 잠들었구나. 잠들면 깨지 못할 텐데. 내가 깨워주기로 했는데. 나는 번뜩 정신이 들어서 하민에게 전화한다. 전화를 받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다시 건다. 일어나서 발을 동동 구른다. 카톡을 보낸다. 잠들었어? 괜찮아?

잠들었겠지. 사무실에서 잠들었겠지, 종종 그러듯이.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면 어떡하지? 이번에는 진짜 쓰러져서 다시는 깨어나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러면 나는 알 수 있을까? 나는 슬퍼할 자격이 생길까? 지금의 하민에게 내가 소중한 존재라고 해도, 사라진 하민에게도 나는 중요한 존재일까? 나는 하민이 사라졌다는 소식은 전해 받을 수 있을까? 하민이 사라져서 눈물을 흘리는 지연,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상상되고 우리의 관계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오직 사고의 영역에만 있었던 것이 되고…

여덟 번째 전화를 걸다가 포기하고 차가운 바닥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어차피 잠들었다면 지금 전화를 받아봤자 소용이 없다. 우리 집을 왔다가 아침에 다시 출근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다. 차라리 사무실에서 한 시간이라도 더 자는 게 낫겠지.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며 이것마저 꿈인가를 생각해본다. 꿈이라면 어디서부터 꿈일까. 하민이 우리 집에 다녀가던 것도 꿈일까. 면도기를 발견한 것도 꿈일까. 우리의 퀴어함도 꿈일까. 우리의 관계도 꿈일까. 이것은 모두 사고의 영역. 내가 하민에게 존재하는 것도 사고의 영역. 현실적으로 증명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처음 하민을 만난 날은 인생에서 몇 손가락에 손을 꼽을 정도로 행복한 날이었다. 우리는 퀴어 바에서 하는 파티에서 만났다. 잔뜩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우다가 단둘이 대화를 하게 되고, 그러다가 술을 더 마시자며 방을 잡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일찍 들어가게 되고. 둘이 남은 우리는 온갖 취향을 공유했다. 퀴어함과 정체성에 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누다가도 신이 나서 서로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들을 틀어 줬다. 하민은 향니의 〈불안지옥〉을 들려주었다. ‘영원이 사실이라면 난 나중에 다시 올게’, 하는 가사를 듣고 깔깔 웃는 모습을 보며 하민은 나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고 나중에 얘기해줬다. 그날은 우리는 아무 걱정도 없었다. 무지개 리본이 달린 콘돔을 뜯을 때도 나는 지연에 대해서도 하민의 출퇴근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

이제 하민은 밧줄을 붙잡고 아파트 벽을 기어오르고 있다. 욕조 속의 인어. 욕조는 밧줄로 아파트 외벽에 걸려 있고, 하민은 매일 두 팔의 힘만으로 욕조를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비가 오면 욕조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씻겨 내려가고, 그러면 내려간 만큼 하민은 다시 기어올라야 한다. 언제부터 그렇게 지냈냐고 물으니 하민은 20년 됐다는 대답을 한다. 나는 하민을 욕조에서 꺼내주며, 우리 집으로 들인다.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아주려고 하지만, 닦을수록 몸의 비늘이 벗겨지고, 하민은 점점 작아진다. 어느새 수건을 들어보니 하민은 사라져있고, 수건에 묻어난, 하늘색과 분홍색으로 반짝거리는 비늘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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