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각
1.
발각되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2.
자, 첫 문장부터 아주 지루해졌지만 이야기를 계속해보겠다. 솔직한 이야기를 하자니 마음에 드는 글이 써지질 않는다. 산발적인 문장 조각만 흩어질 뿐, 하나의 글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쓸 수가 없다. 어쩌면 퀴어 플라이에 쓰는 첫 글이라 너무 많은 힘을 주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전략을 바꿔서, 그냥 홍대 술집 구석에 처박혀 하소연하듯 글을 써봐야겠다(술은 마시지도 못하지만). 그럼 다시.
3.
발각되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절대 들켜서는 안 되는 이야기가 있다. 은밀하고 무거운 이야기. 그래, 비밀이라고 불리는 것들. 내가 여자와 사귀고 있다는 것 하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얼마나 멍청한지, 내가 얼마나 음침한지, 내가 얼마나 감정적이고 충동적인지, 그런 것들을 들키는 것이 두렵다.
나는 치밀하지 못해서 온갖 단서와 정보를 흘리고 다닌다. 나의 어색한 표정과 매끄럽지 못한 말들, 허공을 떠도는 시선, 하루가 지나도록 읽지 않는 디엠과 카카오톡 메시지, 왼손 약지에 보란 듯이 끼워진 반지(그리고 물을 때마다 달라지는 허구의 ‘남친’의 신상). 그런 것들은 내 치부를 드러내는 지레가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타인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 내가 이렇게 허술한 거짓말쟁이여도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4.
온 교실에 송출되는 방학식에서 성적 우수상을 받으면서도 나는 두려웠다. 나는 정말 멍청하고 게으른 사람인데. 내가 좋은 성적을 받는 건 시험에 나올 내용만 공부하는 얍삽한 사람이기 때문인데. 우연히 잘 맞는 자습실을 찾아 공부할 시간이 늘었기 때문인데. 내가 바보라는 것이 뽀록나면 어쩌지? 순간 나보다 똑똑하고 성실한 동급생들의 얼굴이 눈앞을 지나갔다. 어릴 때부터 학원에 다니며 열심히 선행학습을 해온 아이들. 교장실에 세워진 캠코더의 카메라가 그 아이들의 눈처럼 느껴졌다. ‘미적투’가 뭔지도 모르는 채 고등학교에 입학한 내가 그 상장을 받는 것이 코미디극 같았다.
학교 선생님께서는 서울대를 써보라고 하셨지만 나는 서울대학교의 이름만 나와도 얼굴을 찡그리며 손사래를 쳤다. 지방에 있는 대학에 원서를 넣으며 붙기만 해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하려 애썼다. 큰 기적을 기대하기 싫었다. 헛된 희망에 부풀어있던 마음이 무너지는 경험을 피하고 싶었다. 마지못해 원서를 넣고 1차 합격발표 소식을 들었을 때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래, 결국 면접을 봐야 하는구나. 이 긴 희망 고문이 2차전까지 이어지는구나.
대학 면접장에서 나는 연기자가 되려 했다. 싹싹하고 활발한 친구의 목소리와 표정을 모방하려 애쓰며 종잡을 수 없는 질문들에 겨우 대답해냈다. 거짓이라고도 진실이라고도 할 수 없는 얄팍한 말이 목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왔다. 하기야, 자기소개서와 생활기록부를 몇십 번이고 읽은 후에는 어디까지가 내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장식이었는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5.
놀랍게도 서울대학교에 들어와 퀴플에 글을 쓰고 있으나, 여전히 이 거대한 엘리트 집단에서 이방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영자 논문을 제대로 읽지 못할 때, 자잘한 계산 실수를 범할 때, 공지를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할 때, 정신을 차리지 못해 과제나 서류의 제출 기한을 넘겨버릴 때, 나의 말이 정돈되지 못한 데다 발음까지도 어눌하다는 것을 자각할 때, 주변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때, 공부할 것들을 늘어놓고 어쩔 줄 몰라 손만 쥐어짜고 있을 때, 십 분도 집중하지 못하고 허둥댈 때…. 나는 열등생의 위치에서 자신의 자질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학교에 남아있을 자격에 대해 생각한다.
악몽이 멈추지 않는다.
꿈속에서의 나는 면접을 보고 1차 합격 통보를 받은 뒤 2차 면접을 준비하거나, 2차 면접에 불합격해서 재수 준비를 시작하거나, 승용차 뒷자리에 앉아 지방에 있는 기숙학원으로 향하거나, 다급하게 수능 공부를 시작하다가 울음을 터뜨린다. 다양한 방식으로 입시에 실패하고 학과에서 추방당한다. 꿈에서 깰 때마다 심장이 빠르게 달음박질친다. 잠깐의 안도 뒤로 절망이 뒤따라온다. 어쩌면, 가파른 오르막에 매달려 불안해하느니 굴러떨어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눈 딱 감고 떨어질 용기도 없는 사람이기에, 이렇게 고통스럽다고 비명을 지르며 어떻게든 매달려 있다. 나의 손바닥을 피로 흥건하게 만드는 것은 나의 체중과 나태함 뿐이다. 오직 나만이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이 거대한 진실과 마주할 때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6.
가면현상(假面現像, IP:imposter phenomenon)은 회사의 중역이나 의사, 변호사 등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지위나 신분에 이르렀으면서도 끊임없이 ‘이것은 나의 참모습이 아니다. 언제 가면이 벗겨질지 모른다’는 등의 망상으로 괴로워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 현상은 경제적인 부분이나 정서적 공감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위키백과, ‘가면현상’)
이것이 내 이야기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정말로’ 멍청함을 숨기고 있는 것이라고 소리치고 싶어진다. 가면현상이 아니라 진짜 가면이라고. ‘정말로’ 나는 참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고. 그나저나, 내 열등함과 무식함이 망상이라고 인정하면 그것을 가면현상이라고 진단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자신의 망상을 인지한다면 그것을 망상이라고 할 수 있나?
나 가면현상 스스로 인정하면 다시 보게 되는 게 다시 그때처럼 망상이라고 인정하면 가면현상 아니게 될 수도 있는 거임? 엄마도?
7.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퀴어 프렌들리한 경향을 보이면, 나는 나의 정체성을 티 내지 못해 안달이 난다. 그러지 말자고 다짐해봐도, 사람을 만나면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애인’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퀴어 콘텐츠를 슬쩍 언급하며 유사 커밍아웃을 한다. 겁도 없이 나에 대한 단서를 줄줄이 늘어놓고, 상대방에게 내가 발각당하길 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언젠가부터 나의 여자친구에 대해 편안하게 말할 수 없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모두 ‘일’이 되었다. 남자친구의 신상을 꾸며내 말하고, 상대방의 연애담에 관심 있는 척하고, 좋아하는 영화나 평소의 취미까지도 결국 헤테로적이고 ‘일반적인’ 것으로 꾸며내야 한다. 보수적인 분위기에다 주변 사람들과의 인맥 관리가 중요한 나의 단과대 안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형편없는 연기를 끝내고 난 뒤의 헤어짐은 해방이지만, 내 비밀을 한껏 티 내고 난 뒤의 헤어짐은 지옥이다. 머릿속에서 내가 뱉은 말들이 하나둘씩 복구되며 후회와 자책이 몰려온다. 불분명한 웅얼거림과 과하게 빠른 말들이 나를 얼마나 경솔한 사람으로 보이게 했을까 생각하며 고통스러운 귀갓길을 버틴다. 결국 누구와 만나든 근심이 뒤따를 수밖에….
8.
발각되는 것이 극도로 두려운 동시에, 발각당하고 싶다.
내가 굳이 보여주지 않더라도, 누군가 훔쳐봤으면 좋겠다.
내 옷을 스스로 젖히는 것만큼 괴로운 순간이 없다.
타인이 은밀하게 나의 무지함과 소수자성을 지켜보았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일말의 동정이라도 던져주지 않겠는가.
9.
그러니까 내가 발각되고자 애쓰는 추한 몸짓들은, 물밑에 잠겨있다 숨을 몰아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나의 수면 위에는 나를 감당해주는 소수의 사람이 있다. 수면 밑에는 정상성 과잉의 삶이 있다. 물속에서 숨 쉴 재주가 없는 나는 온몸이 팅팅 불어 터질 때까지 잠수한다. 하지만 나의 말투와 행동은 무언가 결여된 것처럼 어색하고 미성숙하다. 연애는 일상 깊숙이 침투해있어, 스몰 토크를 이어나가기 위해 가장 쉽게 사용되는 주제이다. 나는 누군가와 친밀해지기 위한 대화를 나눌 때 이 주제들이 언제 나올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나의 성적 지향은 가장 은밀하면서도 가장 일상적이기에, 불균형에 멀미가 난다.
10.
대체 언제까지 익사하는 기분을 느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