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관계론 (생각의 서랍)

시럽
May 6, 2022

나는 아무래도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 일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려고 하니까 생각할 틈이 나지 않더라고. 내가 갇혀있던 상황에서 벗어나서 나의 새로운 신분을 찾아가는 중이라 생각도 자연스럽게 바뀐 것 같다. 현재의 내 생각은 예전과 완전 다른 것이 아닐까 싶더라. 현생 진짜 잘 산다고 해도 가끔 혼자서 불만족스럽다고 생각한 적이 많지. 아무리 혼자서 잘 살아도 나는 옆에 누가 있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많이 든다는 것이지. 물론 친구가 없는 것보다 낫지만, 친구한테 내 모든 것을 다 알려줬기 때문에 이제 고민을 더 말하기 부담스럽더라. 진짜 친하면 내 진심을 말해주잖아. 근데 가끔 나는 나를 사랑해줄 사람의 생각을 듣고 싶단 말이야. 내 행복을 바라주는 사람의 생각, 그런 생각을 듣고 싶다.

그러다 보니 요즘 연애에 관심이 많아져서 틴더까지 깔았다. 틴더 깔고 매칭도 하고 연락도 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데 서로 아는 지인이 없는 상태로 처음 만나다보니 대화 주제가 재미있어봤자 서로의 이상형과 가치관이었을 뿐이다. 나는 이상형은 따로 없고 서로 마음만 맞으면 연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솔직히 이미 만난 상태에서 술도 한 잔 먹으면서 대화 많이 나눴지. 그중 한 명은 청각장애를 가지신 분이었다. 이 사람은 청각장애를 가져 귀만 잘 안 들리지만, 그분이 하시는 것을 보고 내가 반해버렸다.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사람을 보는 눈도 나와 달랐다. 그래서 모든 것에 대해 그 사람과 대화하고 싶었다. 나는 이 사람이랑 관계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눴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사람과 대화 나누면서 나도 나의 관계의 정의에 대해서 생각 많이 했던 것 같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모든 관계가 기본적으로 똑같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어느 정도 그 두 사람이 서로한테 느끼는 감정들에 기반한다. 친구 관계, 연인 관계, 가족 관계도 이런 감정을 기반으로 한 두 사람 사이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가족 관계 같은 경우에는 그들 사이를 묶어두는 보이지 않는 실이 있다. 친구 관계는 가벼워 보이지만 가족같이 친한 사람들이면 가족 관계처럼 된다. 연인 관계도 서로한테 느끼는 사랑이 어느 정도 깊고 서로한테 사랑도 아닌 은혜를 갖게도 되면 가족 관계가 될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변한다. 같은 방향으로 변하는 사람들과 당신 사이의 관계는 이어지며 강해진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당신 사이의 관계는 끊어질 것이다. 그런데 인구가 70억인 지구에서는 두 명이 오랜 시간 동안 같은 방향으로 변할 수 없단다.

그러기에 모든 관계는 언젠간 끝나갈 것이다. 모든 관계는 서로에게 안 맞거나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기거나 아니면 큰 죄를 지으면서 끝나게 될 것이다. 물론 관계를 붙잡으려는 사람이 있으면 관계가 조금이라도 이어질 것이지만 이미 구멍이 나버린 관계에서 똑같은 상황이 일어났다면 관계가 완전히 끝날 것이다. 연인 관계는 그중에서 가장 쉽게 끝날 것이다. 서로 로맨틱한 감정을 주고받는 사이였다면 감정적으로 상처도 많이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친구 관계는 아무래도 연인 관계보다 그나마 덜 쉽게 깨질 것이다. 왜냐하면 서로 상처를 줘도 어느 정도 사과 받았으면 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친구 관계가 연인 관계보다 어렵게 깨지게 되면 마음속에 큰 상처가 남게 될 것이다. 가족 관계는 그 세 관계 중에서 가장 강하다. 그런데 한 쪽만 상처를 받게 되면 영원히 못 고칠 것이고 마음속에 상처만 남지 않는다. 가족 관계는 연인 관계와 친구 관계와 같지 않아 관계가 끝나게 되어도 서로 얼굴을 보고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조금이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의무가 있으니까. 그런데 가족 관계가 끝날 때는 서로한테 끝난다고 하지 않는다. 속으로만 관계 끊어버리면 두 사람한테 큰 상처가 생길 것이고 마음속에 영원히 채울 수 없는 구멍이 생겨버릴 것이다. 물론 끝나지 않은 것처럼 긴 관계는 존재하긴 하지만, 한 사람이 죽으면 그 관계도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이 죽으면 그 관계는 계속되는 것보다, 남은 그 사람이 죽은 자와의 관계의 끝을 간직할 것이란 말이지.

그러면 우리는 왜 관계를 계속 맺고 싶어 할까? 솔직히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고 계속 살아가는 사람이 있겠지. 그렇지만 거의 모든 인간은 관계없이 못 살아남을 것이다. 죽음까지 같이 갈 사람이 없더라도 시기마다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꼭 있을 것이다. 서로 연락이 끊겨도, 서로 더 이상 못 만나도 같이 있는 동안 행복했으면 된 것이다. 이것이 내가 최근에 깨닫게 된 내 삶의 가치관이다. 나는 여러 친구와 여러 이유로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 초딩때 꽁냥꽁냥 댄 남자 애랑 자연스럽게 중딩이 되어서 연락 끊기게 되고, 중학교 때 매우 친하고 인생 목표까지 지은 친구와 가치관이 달라져 연락이 점점 줄고 말았다. 고딩이 되어서 왕따 당해 친구가 몇 없어서 다행히 아직도 연락 안 끊긴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해외로 유학 가게 되어 아무래도 대면으로 못 본 지 3년 된 것 같기도 하다. 대학 와서 인생 처음으로 나와 얼마나 비슷한 존재를 발견했다가 결국 또 손절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만 친구나 인연과 같이 있는 동안 최대로 다정하게 대해줘야 한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끝날 사이인데 왜 좋게 대해줘야 할까라는 마인드를 가지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럴수록 상처 입을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테니까.

그런데 관계는 왜 맺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관계가 좋았다가 어떻게 나빠지는 것인가? 정답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이 같아 관계를 맺게 되고 생각이 달라져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다. 인간이 70억인 세상에서 생각이 똑같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생각이 똑같아야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은 질색이다. 상상해보면 사람의 생각은 서랍장 같다. 그 안에 수많은 작은 서랍이 들어있다. 그러니까 사람과 사람이 그 지정된 서랍에만 똑같은 물건이 들어가 있으면 관계 시작의 불티를 일으킬 수 있다. 불을 계속 유지시키려면 또 다른 서랍에 있는 물건도 어느 정도는 같아야 한다. 서로 같이 보낸 시간이 많을수록 원래 같았던 서랍은 그대로일 것이고 다른 서랍도 그렇게 채워지게 될 것이다. 다만 사람은 한 관계만 밝히지 않는다. 여러 관계를 동시에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생각 안에 있는 서랍들이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서랍 안에 들어가 있는 것 중에 중요한 것도 있고 안 중요한 것들도 있다. 관계에서는 그 물건들이 같거나 다르더라도 그것을 참을 수 있을 때까지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 있다.

그렇지만 언젠가 그 서랍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면 관계가 깨지기 시작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 물건이 마음에 안 들기 시작하면 다른 것들도 마음에 안 들기 시작하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관계의 끝은 똑같다. 서랍 안에 들어있는 생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한테는 작은 것들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싸우지 않고 연락만 잠잠해질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한테는 생각의 차이가 상처로 남게 되어 이를 참지 못해 싸우고 관계가 깨지게 된다. 관계가 끝나면 서랍 안에 있던 것들이 리셋 되어 사라진다. 사람마다 그 서랍 안을 채워주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극복속도도 다를 것이다. 그런데 관계도 서랍장처럼 고칠 수 있다. 관계가 깨지게 되었을 때 서랍 안에 있는 것들은 금방 없어지지 않는다. 대신 그것이 밖으로 나가게 되기 때문에 한 사람만 그것을 주워서 다르게 넣으려고 하면 관계를 고칠 수 있단다. 물론 특정한 관계만 그렇게 고칠 수 있다는 이야기지.

나는 내 생각 서랍을 채우는 속도가 나름 빠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관계 시작이든 끝이든 빨리 정리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같은 나이인 사람과도 잘 못 어울릴 때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항상 내가 지키고 싶은 관계에 내 노력과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니까 이미 적은 수인 내 관계들을 조금 더 오래오래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