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의 말: 엮인 이야기들
안녕하세요,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독자 여러분. 당신은 ‘연결’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가장 직관적으로는 두 물체를 끈이나 선으로 잇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겠죠.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초등학교 교과서 연습문제에서 볼 만한, 양쪽에 각각 같은 개수의 점이 있고 서로 같은 것을 연결하라는 문제. 그런 문제들을 보면 어떻게 하셨나요? 같은 것을 찾고 거기에 해당하는 점끼리 선을 그었죠. 아래 그림처럼요.

한편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생각해 볼 수 있겠죠. 인연(因緣)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보이지 않는 선. 우리는 관계라는 이름의 선을 다른 사람들과 이어나가며 자신과 타인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규정하고, 이를 통해 ‘나’와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구축하죠. 그리고 이러한 개인들이 모여 인간 사회를 형성해요. 어떻게 생각해보면 인간 사회는 거미줄 같다고 말할 수 있겠군요.
하지만 나와 연결된 모든 관계가 동일할 수는 없겠죠.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선의 색이 같지 않은 것처럼요. 빨간 선, 파란 선, 노랑 선이 있듯이 관계에도 그 개수만큼 다양한 이름을 붙여줄 수 있죠. 가장 대표적인 이름으로는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친구, 연인 등이 있겠죠.
그렇다고 같은 이름이 붙여진 관계는 모두 같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럴 리가요. 가령 ‘부모와 자식’이란 이름을 가진 관계는 긴밀할 수 있지만, 한쪽이 다른 쪽에게 일방적인 폭력을 가할 수도 있죠. 만약, 연인이라는 이름의 관계를 맺은 사람이 성별이 서로 다르게 보이는 2명의 사람이라면 사회는 이를 바람직한 관계, 지향해야 할 관계로 규정하고 이를 응원하죠.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사회는 이를 지양해야 할 관계로 여기거나 심지어 그 존재를 부정하기까지 해요. 즉, 관계의 종류는 그 개수만큼이나 다양하고, 보는 사람에 따라 그 관계는 선연(善緣)일 수도, 악연(惡緣)일 수도, 바람직한 관계일 수도, 금기시된 관계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사회는 이를 정형화하여 ‘정상성’이라는 개념을 만들었죠.
사회가 만들어낸 관계에 대한 정상성은 퀴어들을 옥죄어 왔어요. 퀴어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연결체를 형성했죠. 이 연결체는 정상성의 압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쉘터로서의 역할을 해주었어요. Queer In SNU도 그러한 연결체 중 하나로서 지금까지 기능해왔죠. 그리고 2007년, QIS는 “이러한 억압 때문에 답답함에 취한 퀴어들”이 그들의 “아픈 성대를 울려 Queer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Queer, Fly』를 창간했죠.
그 후로 15년이 지났어요. 세상은 변했지만, 우리들의 답답함은 아직 해소되지 않은 듯해요. 아니, 오히려 할 말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글을 써요. 부모·자식 관계에서 느껴왔던 부당함에 대해. 자신을 세뇌해왔던 혐오자들을 향한 분노에 대해. 본인이 수많은 소수자와 관계를 맺고 있음을 망각하고 내뱉는 혐오발언에 대해. 그리고 이러한 각박한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게 힘을 북돋아 주는 관계에 대해. 이러한 이야기들을 한데 엮어 우리는 다시 한번 『Queer, Fly』를 만들었죠.
그리하여, 다시 한번.
안녕하세요, 편집장의 말을 읽고 계신 독자 여러분. 당신이 이 글을 책으로 보든, 인터넷으로 보든, 그건 중요하지 않겠죠. 중요한 건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저와 당신이 글쓴이와 독자로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죠. 어떻게 보면 우리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저와 필진들도 연결되어 있으니 당신이 이 글을 읽는 순간 필진들은 당신과 전혀 무관한 사람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이 문집에 실린 이야기도 당신과 전혀 무관하지 않겠죠.
그러니 부디 잘 읽어주세요. 그리고 비록 각색되었을지언정 이 이야기가 당신 주위에 실존함을 기억해주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