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퀴플을 쓰게 된 이유

미리내
January 1, 0001

1.

내가 퀴어플라이를 처음 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 나는 무성애자라고 정체화하고 있었지만, 내 로맨틱 지향성(Romantic Orientation)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더 정확히는 내가 무로맨틱 엄브렐라에 속하는지 여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이것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나는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소수자 커뮤니티도, 트위터도 하지 않는 내가 관련 정보를 구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내가 참고할 수 있던 정보의 출처가 고작 블로그 2개에 팟캐스트 1개였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학생회관을 지나가다가 학생 식당 메뉴판 앞 테이블에 놓인 퀴어플라이 23호 「배설」을 보게 되었다. 우리 학교에 성소수자 동아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2016년에 있었던 신입생 환영 현수막 훼손 사건을 통해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그 동아리가 문집을 낸다는 사실을 안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문집에 대해 흥미가 생긴 나는 그곳에 놓여있는 책 중 한 권을 챙겨간 후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을 통해 퀴어플라이 블로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블로그에 접속해 이전호에 실린 글도 찾아봤다.

놀랍게도 퀴어플라이 글 중 본인을 무성애자라 정체화한 사람이 본인의 정체성에 관해 쓴 글이 존재했다. 퀴플 12호에 실린 유실 님의 글, 퀴플 13호와 14호에 실린 Ace Doe 님의 글, 퀴플 18호에 실린 잉약 님의 글. 그리고 마침내 퀴플 22호 「사랑」에서 본인을 무로맨틱 무성애자로 정체화한 사람이 쓴 글을 발견했다.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것만 같던 에이로 에이스가 내 주변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분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을 만나기 위한 방법 중 가장 쉬운 것은 QIS에 가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분의 글은 퀴플 23호에는 실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동아리를 가입할지 말지 고민을 했다. 에이로 에이스분을 만나고 싶긴 했지만, 동아리에 막상 들어갔는데 그분이 이미 졸업을 해버리시고 남은 에이로 에이스가 나 혼자면 어떡하지? 다른 동아리원분들도 나를 잘 받아줄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사람을 꽤 무서워하기에 동아리에 가입하는 것이 겁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퀴플 24호 「거짓말」이 발간되었다. 그 호 첫 글은(편집장의 말을 제외하고) 그 에이로 에이스분의 글이었다. 동아리에 들어가면 그분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순간 나는 폰을 켜고 가입 메일을 썼다. 그렇게 난 QIS에 들어왔다.

2.

QIS의 여러 행사 중 가장 관심이 갔던 행사는 퀴어플라이 회의였다. 나를 동아리로 발걸음하게 만들었던 그 문집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간 퀴플 회의는 26호의 주제를 정하는 기획회의였다. 다양한 사람들이 동아리방에 있는 네모난 탁자 주위에 빙 둘러앉아 자기가 원하는 이번 호수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양한 대화가 오간 후 정해진 주제는 ‘외계’였다. 그 후,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쓰고 싶은 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정말 다양한 글감이 자연스럽게 쏟아져 나왔지만 나는 딱히 생각나는 주제가 없어서 글감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편집장님은 나에게 제안 하나를 건넸다. “님 전공이 그쪽이니까 한번 외계인에 대한 글을 써보는 게 어때요?” 꽤 재미있어 보이기도 했고 내가 잘 아는 주제니까 글을 쓰기 쉬울 거라 생각해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퀴플에 첫 글을 쓰게 되었다.

내 첫 글이 발간되면서 퀴어플라이에 글을 쓰는 일이 생각보다 진입장벽이 높지 않고 재미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27호에도 글을 쓰기로 했다. 27호에서는 저번 글처럼 나랑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글 대신 나 자신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다. 나라는 또 다른 에이로 에이스가 QIS에 존재함을 알리고 싶었다. 내가 동아리에 오기까지 그분의 글이 큰 도움이 된 것처럼 내 글도 다른 에이로 에이스분에게 조그마한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마침 27호의 주제가 ‘옷’이었고, 그 주제를 듣자마자 군대에서 들었던 에이엄 혐오발언이 떠올랐다. 그래서 ‘군복’이라는 제목으로 이에 대한 글을 썼다. 이렇게 미리내는 에이로 에이스로서 퀴플에 다시 한번 등장하게 되었다.

28호의 장례식 글은 정말 우연에 우연이 겹쳐 쓰게 된 글이었다. 그즈음에 있었던 할아버지의 장례식, 그즈음에 내가 텀블벅에 후원했던 책 『외롭지 않을 권리』, 그리고 28호의 주제 ‘죽음’까지. 이 세 우연이 한데 모여 내 장례식 경험과 거기에 스며든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29호 「이름」에는 원래 에이로 에이스라는 정체성에서 오는 고정관념과 그것을 깨는 내용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으나, 하필 그 때 인권헌장 관련 일로 번아웃이 와서 계획했던 글을 쓰지 못했다. 그 대신 인권헌장 제정 운동을 하면서 느꼈던 분노에 대한 글을 급하게 쓰기 시작했고, 다행히 글이 잘 나와서 퀴플에 실을 수 있었다.

이렇게 4호 동안 퀴어플라이에 글을 쓰면서 이 문집에 대한 내 애정은 깊어져 갔다. 그래서 한 번쯤 문집 제작을 총괄하는 위치인 편집장을 해보고 싶었다. 마침 28호와 29호를 맡아주신 편집장님이 사정상 30호는 편집장을 맡지 못하게 돼서 나에게 편집장을 해보라는 권유를 해주셨다. 그 덕분에 나는 30호 편집장에 지원했고, 결국 편집장이 되어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3.

사람 사이의 연결이 단지 서로 만나서 대화하는 것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방적일 수도 있겠지만, 필자와 독자도 나름 연결된 관계 아닐까? 다시 말하면 당신이 이 글을 읽음으로써 나와 당신 사이에 모종의 연결 관계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럼, 우선 질문. 이 관계가 당신에게 무엇을 가져다줄까? 이 글은 당신에게 무엇일까?

내가 쓴 이 글이 당신에게는 자투리 시간에 읽는 재밌는 글 한 편일 수도 있다. 내가 쓴 이 글이 당신에게는 퀴어플라이 필진 ‘미리내’를 소개하는 글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쓴 이 글이 당신에게 에이로 에이스라는 정체성의 존재를 어필하는 글이 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내가 쓴 이 글이 당신에게 “나와 비슷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 내 주위에서 살아가고 있구나”고 알려주는 글이 될 수도 있다. 마치 22호의 글이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물론 사람에 따라 글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다 다르기 때문에 내 글에 대한 모든 반응을 내가 전부 예측할 수는 없다. 그냥 위에 말한 것은 내 희망 사항일 뿐이다.

반대로, 나에게 이 글은 무엇일까? 뭐, 별거 없다. 그냥 쓰고 싶은 얘기를 쓴 글.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이 시대에 있었다는 기록. 그뿐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퀴어플라이에 글을 쓰는 행위는 마치 메시지 보틀을 바다에 띄우는 것과 같다. 종이 하나를 구해서 무언가를 휘갈겨 쓴다. 그 글을 병 안에 넣고 뚜껑을 막는다. 그리고 바다에 흘려보낸다. 누가 이 메시지를 읽을지는 모른다. 단지 누군가 이 보틀을 발견해 안에 들어있는 글을 읽기를 바랄 뿐이다. 그 메시지가 도움이 되는 글일지는, 뭐… 메시지를 읽는 사람만 알겠지.

그렇기에 이 글이 사람들 사이에 큰 물결을 만들 것이라 기대하진 않는다. 이글은 그럴 만큼 호소력이 있진 않다. 다만, 이 글이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되어서 도움을 주길 바란다. 이러한 경우가 적어도 하나쯤은 있을 거라는 확신은 있다. 우선 내가 그랬으니까.

나는 그래서 퀴어플라이에 글을 쓴다. 내 글을 읽을, 나는 모르는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내 글이 단 한 사람에게 만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내 글은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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