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심(無名心)
내가 큐이즈 가입메일을 쓰면서 에이로맨틱으로 정체화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나? 웃기지만 진짜로 그랬다니까. 에이섹슈얼 정체화는 고등학생 때 했는데, 그 이후로 나의 로맨틱 정체성을 두고 한참을 고민했어. 헤테로로맨틱일까, 바이로맨틱일까, 아니면 팬로맨틱일까. 그레이로맨틱이나 데미로맨틱은 또 해당이 될까. 그러다가 가입메일을 쓸 때 반쯤은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에이로맨틱 에이섹슈얼이라고 적었는데, 써놓고 보니 나에게 꼭 들어맞더라고. 뭐, 좋은 이름이지.
사람들이 ‘에이로맨틱’하면 무슨 감정도 없는 양철 인간이라고 제멋대로 상상해버리는 건 이제 아주 웃기지도 않아. 어디 좀 더 참신한 혐오 없나요? 안타깝지만 내가 완벽한 반례에 해당하는 인간이거든. 나는 누가 봐도 감정적인 사람이야. 과할 정도로. 다혈질이라 곧잘 흥분하기도 하고, 영화 보다가도 ‘아, 이건 관객들 눈물 짜내려고 일부러 넣은 장면이구나.’라는 걸 다 알면서도 막 울어. 정도 엄청 많아서 친구들 챙겨주는 것도 좋아하고, 관계도 모질게 못 끊어내고 그래. 그래서 반쯤은 농담으로 나 자신을 ‘사랑이 넘치는 에이로맨틱’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공감도 너무 잘해서 가끔 남의 감정에 내가 휩쓸리기도 해. 나한테 없는 건 딱 하나야. 다른 사람을 보고 ‘연애하고 싶다.’라고 느끼는 로맨틱 끌림. 단지 그뿐.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방식은 뭐랄까, 가랑비에 옷 젖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 그러고 일단 상대를 사랑하게 되면 그 관계에 푹 빠져버려 헤어 나오지를 못해. 그런데 온종일 그 사람 생각에 몰입해있는데도, 이상하게 그 사람과 연애하고 싶다고,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로맨틱하다고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어. 단 한 번도. 어찌 보면 이상한 조합이야.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관계에 과몰입하기 쉬운 내가, 에이로맨틱이라니, 아이러니하지.
그렇다면 대체 연애라는 건 뭘까?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근데 내가 모르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하지 않아? 지난 20여 년 동안 그렇게 연애를 찬양하는 매체 속에서 자라왔는데도, 정작 나는 누군가와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지. 그래도 생각해본다는 건 재밌는 일이야. 비록 내가 평생 닿지 못한다 해도. 사실 너무 궁금해서 사람들에게 물어봤어. 누군가에게 반한다는 건 어떤 느낌이냐고. 심장이 아프다든지, 명치에 충격이 느껴졌다든지 하는 여러 이야기를 들었어. 하지만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지. 그게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걸까? 그 사람이 나만 바라봐주었으면 하는 마음, 연락이 끊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내가 그 사람에게 특별한 존재였으면 하는 마음이 나는 정말 신기해.
그렇다면 나의 사랑과 로맨틱한 사랑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다른 걸까? 언젠가는 그 차이란 집착과 질투가 아닐까, 한 번 그렇게 생각해봤어. 왜냐하면 ‘정상 연애’를 상상해보았을 때, 내가 가장 무서워했던 게 바로 그거였거든. 아무리 미칠 듯이 사랑한다고 해도, 누군가가 나에게 집착하는 것도, 내가 누군가에게 집착하는 것도 도저히 내 머릿속에서 용납이 안 되더라고.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걸까? 물론 연애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상상만 해도 너무나도 갑갑했어. 내가 견디기 힘든 것이라면,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러면 에이로맨틱은 집착하지 않는 사람인가? 글쎄, 그건 또 아닌 것 같아. 나는 사람은 아니고, 물건에 굉장히 많이 집착하는 편이라서. 나는 ‘내 물건’에 대한 애착이 엄청 심한 편이야. 엄마 말로는 어릴 때부터 그랬대. 내가 직접 만든 지우개를 엄마가 말없이 내 만들기 숙제에 잘라서 썼다고 온 집안이 떠나가라 대성통곡을 했던 게 9살 때였나. 지금도 지갑이나 카드 같은 중요한 물건이 아니어도, 잃어버리거나 어딘가에 놓고 온 걸 알게 되면 되찾을 때까지 엄청 불안하고 초조해. 내 물건이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이라서.
아, 근데 생각해보니 사람에게 아주 집착을 안 하는 것도 아니었네. 물론 가족 한정이기는 하지만. 가끔 가족이 차를 타고 어디 멀리 다녀온다는 말을 들으면, ‘혹시 오다가 사고 나서 다치거나 죽지는 않을까?’ 이런 식으로 많이 걱정하고는 해. 내가 봐도 좀 쓸데없는 걱정인 것 같아서 지금까지 가족에게는 말도 못 하고 있어. 몸이 떨어져 있어서 안전하다는 상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면 불안한가 봐. 아직도 분리불안이 있는 건가? 뭐, 이건 내가 과잉불안이라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아까도 말했듯이 정이 많아서 내 사람에게 잘해주려 하는 성격인 것도 한몫하는 것 같고.
이건 약간 다른 이야기인데 말이야. 언젠가 다른 일로 기질 및 심리검사(TCI)를 해본 적이 있어. 검사 결과지를 받아들고 이것저것 검색을 해보다가, 내 기질 그래프가 ‘경계선 인격장애’와 비슷한 것 같더라고? 뭔가 궁금해져서 좀 찾아봤는데, 솔직히 많이 찔렸어. 다른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계속 의지하려고 하면서도, 한없이 무서워하고 미워하고. 감정 기복이 엄청 심해서 누군가에게 화를 엄청나게 냈다가 또 상냥하게 굴다가 그러고. 나 자신이 공허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나를 해치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타인의 관심을 받으려고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버림받을까봐 매우 무서워한다는 점이.
물론 내가 인격장애라서 당장 치료를 받아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왜냐하면 나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데 있어 지금까지 커다란 문제도 없었고, 도박이나 과소비 같은 위험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딱히 저지르지도 않았거든. 그렇지만 뭔가 내 안의 어둠을 처음으로 똑바로 바라본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나는 가끔 내가 에이로맨틱이 아니었다면, 사랑 때문에 너무 괴로워하다가 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을지도 모르겠다고, 늘 그런 말을 많이 했거든. 비록 내가 경계선 인격장애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가 왜 그런 가정을 곧잘 하는지 어느 정도 설명이 되는 것 같았어. 그러니까 나도 역시 똑같았던 거야. 사랑을 갈구하며, 사람에게 의존하고 집착하려 하는 모습이.
보통 그런 인격장애는 어린 시절의 애정결핍이 원인이라고들 하더라고. 내가 딱히 좋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건 아니야. 부모님은 좋으신 분이었어. 하지만 생각해보니 유달리 칭찬에는 인색하셨던 것 같아. 내가 아무리 열심히 잘 해놓아도, 별로 크게 칭찬해주신 적은 없고 그냥 그게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기도 해. 그래서 어릴 때의 나는 단순히 내가 더 열심히 하면 칭찬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나 봐. 공부도 사람을 대하는 것도 완벽해지려고 무지하게 노력했어.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칭찬받고 싶었고, 사람들이 날 버리지 않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던 모양이야. 버려지는 게 너무 무서워서 나를 혹독하게 채찍질한 거지.
아니 하나님, 애정결핍인데 사랑이 넘치는 에이로맨틱이라니, 이거 너무 설정과다 아닌가요? ―물론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사람의 마음은 이처럼 참 복잡하다고 생각해. 나는 분명히 로맨틱 끌림을 느끼지 않는 에이로맨틱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사랑과 집착을 모르는 건 결코 아니야. 그렇지만 나는 내가 품고 있는 이 사랑과 헌신과 집착과 질투가 한데 뒤섞인 이 마음을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어. 사랑이라는 이름은 이 감정들을 일컫기에 너무나도 넓고 흐릿한 이름이야. 집착이나 질투라고 부르는 것도 별로 내키지는 않아. 그건 확실히 에이로맨틱이 아닌 이들의 것과는 다르니까. 분명한 건, 이 마음 또한 내 것이라는 점이야. 이 이름 없는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