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곳에 낙원은

스에
January 1, 0001

학창 시절만 해도 항상 모든 일에 성실하게 임한다는 소리를 듣던 내가 어른이 되면서 배운 것은 적당히 도망치는 법이었다. 세상을 삼켜버릴 듯한 거대한 이상과 실제로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나의 깜냥 사이의 괴리를 깨닫고, 장기전을 위해 일단은 물러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철이 없을 때는 그저 비겁하다고 비웃었던 누군가의 타협이, 사실은 진퇴양난 속에서의 아주 치열하고 괴로운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늘만 반짝 살다가 죽어버릴 하루살이가 아닌 이상 나는 당장 제한된 에너지를 쏟아부을 곳을 선택해야만 했다. 물론 모든 일에 온 힘을 다해서 들이받을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나는 그만큼 튼튼하지 않았고 때로는 부서지기 전에 달아나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에이섹슈얼이 대체 무슨 차별을 받는지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로서는 꼭지가 돌아버릴 정도로 화가 나는 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쩐지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이해되기도’ 한다. 아무래도 에이섹슈얼은 다른 정체성에 비해 가시화가 덜 되었다 보니, 호모들에 비해 직접적으로 두들겨 맞는 정도가 덜하다. 애초에 사람들은 에이섹슈얼이 존재한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고 무시하기 일쑤니까. 나는 정체성들끼리 고통을 비교할 생각은 없다. 다만 각각 그 고통의 영역 내지는 방향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럼 그냥 섹스에 별로 관심 없는 일반인인 척하면, 딱히 미움받지 않아도 되잖아.”라고 말하기도 한다. 뭐,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이런 문제들은 어떨까.

나의 부모는 시골에서 직접 재료를 구해다가 요리를 하는 잔잔한 예능을 좋아한다. 금요일 저녁이 되면 온 식구가 텔레비전 앞으로 모여 최대한 편한 자세로 그 방송을 보고는 한다. 예전에 그 방송에 홍석천 씨가 나온 적이 있었다. 특별히 불편할 만한 연출이나 자막은 없었다. 그는 한국 시골에서 난 재료를 가지고 곧잘 하던 태국식 요리를 했다. 화면에 나오는 완성된 요리가 먹음직스럽다고 느낄 무렵에, 갑자기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쟤가 그, 걘가? 그, 여자가 되고 싶은?”

살면서 얼굴에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던 노력이 성공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딸자식 된 도리로서, 금요일 밤의 평화를 깨지 않기 위해 최대한 친절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무심한 듯한 말투로, 저 사람은 트랜스젠더가 아니라 게이라고 열심히 설명했다. 아버지는 대충 납득을 한 것 같았고, 그날의 소란은 그게 전부였다. 그러나 나는 그 짧은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트랜스젠더와 게이도 구분하지 못하는 부모에게 에이섹슈얼을, 에이로맨틱을, 에이젠더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나는 그날 이후로 언젠가는 부모에게 커밍아웃하겠다는 마음을 완전히 접어버렸다.

사실 부모는 이미 내가 연애고 결혼이고 아무것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은 이미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때가 되면 알아서 하겠지.’라는 심정으로 지금까지 나에게 연애에 관해 캐물은 적이 딱히 없다. 처음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남자친구를 데려오면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라고 묻겠다고 곧잘 농담을 던지던 아버지도 이제는 별말이 없다. 부모는 맞벌이를 위해 그리고 늘그막에 서로 정서적으로 기대어 살기 위해 내가 좋은 사람과 만나 결혼은 했으면 하는 바람을 아직도 버리지 않았지만, 적어도 결혼하지 않겠다는 내 결정에 간섭하지는 않겠다는 태도다.

나는 꾸준히 부모에게 내가 느끼고 생각해온 것을 그대로 말해왔다. 예를 들어, 늦은 저녁 부엌 정리를 한창 하던 어머니에게 쭐레쭐레 다가가서 이런 말을 던지는 것이다. “엄마, 나는 아직도 연애하고 뭐 그런 거에 딱히 관심이 없어. 남자애들……다 별로야. 친구는 많은데. 아, 근데 그렇다고 여자에게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야. 그냥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어, 그냥.” 이쯤 되면 커밍아웃만 안 했지, 에이섹슈얼 에이로맨틱이라는 건 다 말해버린 셈이다. 어쩌면 비연애주의 비혼주의자로도 읽힐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여전히 부모는 내가 단지 연애와 결혼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딸자식으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나는 비연애주의자이자 비혼주의자인 것도 맞으니까. 연애하며 예쁜 사랑 해나가는 친구들을 흔쾌히 기쁘게 응원할지언정, 정작 내가 그런 독점적인 관계에 속해 있다는 상상을 하면 숨이 막힌다. 그리고 결혼은 생각만 해도 속이 뒤틀리는 것 같다. 언젠가는 여러 제도적 이익 때문에 혹은 마음 맞는 친구와의 원활한 동거를 위해 (반쯤은 재미로) 위장 결혼 같은 것도 상상해 본 적 있었지만, 아직도 한국에서 결혼은 집안과 집안끼리의 결합에 가깝기에 어찌어찌 성사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부딪치는 문제가 너무 많았다. 가부장적 결혼 체계에서 내가 ‘며느리’가 된다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면 디스포리아가 도져 견딜 수가 없다.

내가 좀 더 예전에 태어났거나, 나의 부모가 좀 더 구시대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면 분명히 나 또한 남자친구를 만들고 결혼하라는 압박에서 지금처럼 자유롭지는 못했을 것이다. 확실히 이 점은 행운이다. 막내 할아버지에 막내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딸에게는 대를 이어야 할 의무 같은 것은 없다. 그리고 부모는 어쩌다가 서로 천생연분을 만나 지금까지 아주 이상적이고 화목한 가정을 잘 꾸려왔지만, 다행히도 그런 상대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엄청나게 어렵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최소한 연애와 결혼을 강요하지 않았다.

요즘은 세상이 많이 좋아져서, 비연애주의라면 몰라도 비혼주의는 이제 그다지 이상하게 여겨지지는 않는 것 같다. 어쩌다 보니 나는 비혼주의라는 시류에 조용히 묻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우연히 맞닥뜨리게 된 시대의 흐름은 나에게 일종의 기회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애써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또는 굳이 아득바득 내 퀴어 정체성을 내세우지 않아도, 그럭저럭 내 삶의 방식을 인정받을 기회. 내 이름을 찾아 정체화를 했다고 해서 그때부터 내 앞에 장밋빛 퀴어의 길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이 땅에서 퀴어로서 살아가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때때로 나는 그냥 비혼주의자로 살아가며, ‘정상 사회’에 대충 받아들여진 채 조용히 편하게 살아가고 싶은 유혹을 느껴왔다.

이렇게 퀴어라는 이름으로부터 애써 도망치고 있다. 하하, 그저 난 좀 특이한 딸일 뿐이에요. 때가 되면 갑자기 연애 결혼을 하게 될지, 아니면 끝까지 안 할지도 잘 모르겠네요. 어쨌든 지금은 그렇다는 거예요. 어디든 도망칠 곳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안심시킨다. 마치 내가 첫 대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난 뒤, 대학생 신분을 유지한 채 반수를 선택했듯이 말이다.

물론 에이로맨틱 에이섹슈얼이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비연애주의자이거나 비혼주의자일 수 있다. 나는 그런 이들에게 깊은 유대감과 동시에 근본적인 거리감을 느낀다. 생각해보면 퀴어가 아니면서도 비혼주의자인 사람들도 많다. 혹은 래디컬 페미니스트이거나, 심지어는 퀴어 혐오자이더라도 비혼주의자일 수 있다. 나는 누구든지 정체성과 관련 없이 결혼하고 싶으면 하고, 결혼하고 싶지 않으면 자유롭게 안 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단순히 비연애·비혼주의자로만 나를 일컫는 것에서 묘한 불편함을 느낀다. 마치 대충 사이즈는 맞지만 어딘가 한 부위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은 답답함이 있다. 에이로맨틱 에이섹슈얼이 아닌 이들과 나는 분명히 다른 존재이다. 내가 그들을 이해할 수 없듯이, 그들은 결코 내가 부모에게 정체성을 설명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느꼈던 그 절망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점에서부터 나는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균열과 혼란을 느낀다. ‘모든 에이로맨틱/에이섹슈얼이 연애/결혼 안 하는 건 아니에요.’라는 말은 지극히 당연하지만(여러분 제드로맨틱 에이섹슈얼의 존재를 잊지 마세요!), 막상 내 실제 삶에서 비연애·비혼주의와 에이섹슈얼 에이로맨틱을 분별하기란 쉽지 않다. 애초에 그 교집합에 있는 나라는 사람에게서 그 둘을 따로 떼어서 각각 생각할 수 있나? 내가 에이로맨틱 에이섹슈얼이라고 해서 비연애·비혼주의를 선택한 것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에이로맨틱 에이섹슈얼과 비연애·비혼주의가 또 완전히 관련 없는 거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이 둘은 완전히 같은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칼로 무 자르듯이 탁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 한구석의 거리낌을 묻고 도망치고 싶은 유혹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사실은 언제까지 도망치게 될지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죽는 날까지 달아날 수도 있다. 나와 같은 처지로 이 세상을 살아갔지만, 끝내 무덤으로 들어갈 때까지 자신을 숨겼던 이름 없는 무수한 선조들처럼 나도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도망치는 것이 꼭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꿋꿋이 버텨내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 사람들처럼 견뎌낼 수만은 없다.

그런데도 어렴풋이 느끼는 것은, 언제까지고 마냥 도망치고만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불편함일 수도 있고, 내가 정체화한 이 이름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일 수도 있고, 도망치는 내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일 수도 있고, 유성애정상성에 순순히 굴복하지 않겠다는 반항심일 수도 있다. 어쩌면 앞서 말한 것들이 전부 그 이유에 해당할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내가 도망친 곳이 결코 낙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뿐이다.

실은 부모에게 아직 말하지 않은 게 너무 많다. 방학 때마다 함께 산으로 바다로 놀러 갔던 친구들이 사실은 고등학교 친구가 아니라 퀴어 친구들이었다는 것도, 월경 때마다 왜 난 이렇게 태어났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절망감에 휩싸인다는 것도, 사실 아버지 뭐하시냐는 농담이 이제는 몹시 재미없다는 것도,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나는 이미 심신을 완전히 소진해버렸고 너무나도 지쳤다는 것도.

언제쯤 나는 도망치지 않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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