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지 못했던 장례식
1.
수업을 듣는 도중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문자를 받았다.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건강 상태에 대해선 나도 들은 바가 있었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으신 사실도 알고는 있었으니까. 다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더 빠르게, 그리고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
수업이 끝난 후 서울에 사는 동생과 함께 고향으로 내려가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빈소로 들어가는 길에는 각지에서 배송된 하얀 화환이 늘어져 있었다. 빈소 입구에 설치되어있는 모니터에는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이 띄워져 있었고 그 옆에는 유족들의 이름들이 상주, 자부, 녀, 손, 외손 순으로 굳이 구분되어 쓰여 있었다. 이미 와있었던 다른 친가 친척들은 검은 상복을 입고 나를 맞이해주었다.
도착하자마자 분향실로 가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다. 제단 위에 놓인 할아버지의 사진 양쪽 귀퉁이에는 검은색 끈이 둘러 있었다. 제단 앞에는 제사상이 차려져 있었고 그 앞에는 국화꽃과 술잔이 놓여 있었다. 제단 밑에 무릎을 꿇고 앉아 술을 올린 후 큰절을 두 번 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 후 서울에서 들고 온 짐을 ‘가족방’에 놓고 옷을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남성패싱인 나는 상복으로 하얀 와이셔츠, 검은색 정장, 검은 넥타이를 입고, 왼팔에 한 줄짜리 완장을 찼다. 평소에 양복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그날만큼은 양복을 입는 데에 별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 다만 그동안 체격이 줄었는지 겉옷이 커서 한 치수 작은 옷으로 바꿔입어야 했다.
장례식은 생각했던 것보다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입관식이나 발인식 때를 제외하고는 눈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20명쯤 되는 친가 친척들이 다 와있었기도 했고 시기가 시기여서 조문객이 평소보다 줄어 일도 쉬엄쉬엄할 수 있었다. 쉬는 시간에는 오랜만에 본 친척들과 수다도 떨 수 있었다. 돈 문제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지도 않았다. 단어 그대로 평화로운 장례식이었다.
입관식은 참관실에서 수의를 입힌 할아버지의 시신을 보고, 장례지도사분이 염1을 진행한 후 시신을 관에 넣는 순으로 진행되었다. 참관실에 모인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시신 주위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았다. 누군가가 “아들, 손자 많이 보셨고, 가족들끼리 사이가 좋으니 성공한 인생을 사셨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슬픈 우리들의 표정과는 반대로 누워계신 할아버지의 얼굴은 정말로 평온해 보였다. ‘나도 죽으면 저렇게 누워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셋째 날에는 발인식 때부터 유골함을 땅에 묻을 때까지 내가 할아버지의 영정과 신위2를 모셔야 했다. 영정사진을 들게 되면 장례행렬의 가장 앞에 설 수 있고 운구용 리무진의 앞자리에 탈 수 있지만, 발인식 등을 할 때 행사에 직접 참여할 수도 없고, 행사 진행 중에는 고인의 사진도 보지 못하게 된다. 나도 행사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장손이라는 이유로 내게는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3일간의 장례식을 마쳤지만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건 아니었다. 감정은 의외로 장례식이 끝난 직후부터 올라오기 시작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 감정을 잘 누그러뜨리고 할아버지의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할아버지가 내게 내준 마지막 숙제인 듯하다.
2.
글을 여기서 끝내기는 조금 아쉬워 보인다. 여기까지만 읽고 ‘본인 기억 속에 묻어둬도 될 할아버지의 장례식 이야기를 왜 굳이 퀴플에 들고 온 거지?’라는 의문이 드실 독자분들도 꽤 있을 것 같다. 지금부터 그 질문에 대해 답을 해보려고 한다. ‘장례식’을 구성하는 일부분을 조금 뜯어보려고 한다.
장례식이 진행되는 3일 동안 빈소에 방문하는 사람은 장례식장 직원분을 제외하면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3 성별에 따라 나뉜 검은색 상복을 입고 빈소를 3일 동안 지키는 ‘유족’들과 상복을 입지 않고 유족들을 위로하러 방문하는 ‘조문객’들. 유족은 고인이 사망했을 때부터 안장될 때까지 모든 과정에 참관하며4 조문객들을 맞이한다. 조문객들은 유족에 비해 짧은 시간 동안 빈소에 머무르며 고인에게 애도를 표하고 유족들을 위로하며 조의금을 낸다. 이렇게 입는 옷, 장례식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따라 유족과 조문객들은 ‘분리’된다.
그렇다면 고인과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이 유족이 될 수 있을까? 관습적으로 고인의 친족이 유족이 된다. 그런데 사실 누가 유족이 될 수 있고, 누가 유족이 될 수 없는지에 대한 기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정해진 것이 없다. 적어도 장례식장에서의 ‘유족’은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왜 유족하면 보통 친족을 생각할까? 가장 쉽게 떠오르는 답은 ‘아직 우리나라 사회에 유교의 잔재가 남아있어서’ 일 것 같다. 그리고 아마 다음 법도 여기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 "연고자"란 사망한 자와 다음 각 목의 관계에 있는 자를 말하며, 연고자의 권리ㆍ의무는 다음 각 목의 순서로 행사한다. 다만, 순위가 같은 자녀 또는 직계비속이 2명 이상이면 최근친(最近親)의 연장자가 우선 순위를 갖는다.
- 가. 배우자
- 나. 자녀
- 다. 부모
- 라. 자녀 외의 직계비속 (인용 주 : 손자 등)
- 마. 부모 외의 직계존속 (인용 주 : 조부 등)
- 바. 형제ㆍ자매
- 사. 사망하기 전에 치료ㆍ보호 또는 관리하고 있었던 행정기관 또는 치료ㆍ보호기관의 장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
- 아. 가목부터 사목까지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자로서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
제12조(무연고 시신 등의 처리) ① 시장등은 관할 구역 안에 있는 시신으로서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는 시신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매장하거나 화장하여 봉안하여야 한다. 다만,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이 법에 따르면 사망자와 가족관계에 있지 않으면 사실상 시신을 인수해 장례를 치르는 것이 불가능하다. 아목을 넓게 해석하면 고인과 친구 관계에 있거나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도 시신 인수가 가능하지만, 이 조항을 이렇게 넓게 해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5 유족에 혈연가족 혹은 법적 배우자가 끼어있지 않으면 장례를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법 조항과 가족관계의 배타성, 장례는 집안의 일이라는 사회의 인식이 합쳐져서 유족이 사실상 친족과 같게 되는 것이다(유족이 친족에 포함된다고 쓰는 쪽이 더 명확할 것 같긴 하지만).
다행히도 할아버지의 경우 연고자에 해당하는 사람이 꽤 있는 편이었고, 그 사람들끼리 사이도 좋아 장례에 참여한 유족의 수가 꽤 있는 편이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자식 많고 그 자식들끼리 사이가 좋다면 인생 성공한 것이란 말도 꽤 타당해 보인다. 당신의 마지막 여정을 배웅해 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문제는 죽은 이후에 시신을 받아 장례를 치러줄 연고자가 없는 경우이다. 나는 결혼을 하지도, 그리고 자식을 만들지도 않을 생각이라 법률상 연고자는 내 친동생들밖에 없을 것이다(내가 만약 일찍 죽게 되면 부모님도 가능하겠지만 그 경우는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죽기 전까지 동생들하고 사이가 좋으면 동생들에게 맡길 수도 있겠지만 동생들하고 사이가 나빠져서 그 사람들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장례를 치를 수 없다면? 혹은 만약 동생들이 나보다 먼저 죽는다면? 그러면 나는 무연고자가 되고, 아무리 친한 친구가 있더라도 그 사람이 내 장례를 대신 치러줄 수 없다.
마찬가지로 고인의 장례를 치러주고 싶은데 본인이 법률이 지정한 고인의 연고자가 아니어서 장례를 치를 수 없는 경우도 문제가 된다. 배우자가 사망했는데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고자가 아니게 된 경우, 동성부부여서 애초에 혼인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못하는 경우도6 장례를 고인, 그리고 그와 가까운 사람이 원하는 대로 치를 수 없다. 이들은 혈연가족과 이성 간 결혼을 중시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려지고 소외된다. 즉,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죽은 이후에도 연고자라는 형태로 우리가 생전 맺어온 관계에 위계를 부여하고, 장례식을 통해 우리가 살아온 인생을 재단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사람의 죽음은 엄연한 현실이다. 남아있는 사람에게는.
3.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씩은 나아진다는 것이다. 지난 2019년 12월 9일 연고자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후 장사법)’이 발의되었다. 이 법안을 제안한 의원들은 제안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7
현행법은 배우자, 자녀, 부모 등의 순서로 연고자의 권리·의무를 행사하도록 하면서,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도 연고자로 포함하고 있음. 그런데 대다수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여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 조카, 가족보다 가깝게 지낸 지인 등은 연고자로 인정받지 못해 시신을 인수할 의지가 있더라도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되는 과정을 지켜만 봐야하는 상황임
현행법에서의 아목이 지나치게 좁게 해석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국민이 있다는 것을 국회의원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이 법안은 20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되었지만 이와 같은 법안이 계속 발의가 되면 언젠간 통과될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위 법안들도 연고자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매긴다는 점, 그리고 해석이 갈릴 수 있다는 점이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다. 사실혼도 법률적으로 명확히 정의되어있지 않으며(우리나라는 판례상 이성 간의 사실혼만 인정한다.) ‘가족보다 가깝게 지낸’ 등의 용어를 명확하게 정의하긴 힘들다. 결국, 이런 조항들을 적용할 때는 법안을 해석하는 사람의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생활동반자법이 후자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다. 애초에 생활동반자법을 입법하는 주된 목적 중 하나가 ‘결혼’이란 제도에 들어맞지 않는 개개인 사이의 친밀한 관계들을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외롭지 않을 권리』의 저자 황두영은 본인의 책에서 조금 더 나아 보이는8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법률에서 규정한 연고자의 우선순위를 무조건 따르는 것보다 고인이 생전에 본인의 장례를 치를 사람을 지정하고 만약 고인이 지정하지 않을 때만 법률에서 정한 연고자의 우선순위를 따르는 방식으로 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9 이렇게 되면 고인이 본인의 장례에 더 많이 관여할 수 있고, 생전에 본인의 죽음을 준비할 계기를 부여해 줄 수 있다. 더 나아가 본인의 ‘죽음’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게 터부시되어있는 현재의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왜 우리는 본인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혹은 생각)해야 하는가? 우리는 언젠가 죽기 때문이며 우리가 언제 죽을지 자기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당신이 본인의 죽음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제대로 누리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유언&상속), 연명치료를 받을 것인지(사전연명의료의향서), 죽은 후 장기기증을 할 것인지(장기기증희망등록) 등을 예시로 들 수 있겠다.
또한, 죽음 자체가 주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부담을 전가하는 행위인 것도 이 질문에 대한 다른 대답이 될 수 있다. 누군가는 당신의 시신을 받아 장례를 치르고 매장해야 한다. 누군가는 당신이 세상에 남기고 간 흔적들을 정리해줘야 한다(사망신고, 유품 정리, SNS 계정관리 등등). 그래서 본인 사후에 이와 같은 절차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주변 사람과 얘기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생전에 당신을 알던 사람은 당신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마음의 짐을 얻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할아버지를 다시 보지 못한다는 부분보다는 할아버지가 죽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해 본인과 직접 얘기해 볼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4.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한 법안들이 통과되고 본인의 죽음을 미리 준비했다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이 얼마나 달라질까? 법안이 통과될 경우를 중점으로 두고 설명을 하자면, 현재와 같은 장례식 진행이나 유산 상속 등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바뀌는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닌 사람에게는 이 법이 본인이 원하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게 되는 경우를 한번 살펴보자.
2013년에 부산에서 60대 여성 A씨가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1011 이 사람은 같은 여고를 나온 B씨와 40년째 동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B씨가 말기 암 진단을 받게 되자 A씨는 동거하고 있는 아파트와 보험금의 명의를 본인으로 바꾸려고 했다. 그런데 B씨의 가족이 나타나 이를 막았고, A씨는 본인 집에서 금품을 가지고 집을 나갔다. 그러자 B씨의 가족은 A씨를 절도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고 집 열쇠도 바꿔버렸다. 결국, A씨는 집도 잃고, B씨의 사망 소식을 듣지도 못하고, B씨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도 없게 되었다. 뒤늦게 B씨가 죽었다는 것을 안 후, A씨가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한 것이 이 사건의 전말이다.
이 사건에서 쟁점이 되는 부분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A씨가 B씨의 간병과 장례 진행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됨
- B씨의 명의로 되어있는 공동재산과 아파트가 B씨의 가족에게 상속됨.
사실 위에서 설명한 장사법 개정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개정안도 연고자 우선순위 끝부분에 파트너를 추가하는 정도이고 이 사건에서 훼방(?)을 놓는 주체는 B씨의 주민등록상 가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활동반자법과 이를 뒷받침하는 법안이 통과된다면 어떻게 될까? 법안에 따라 다르겠지만,12 A씨는 두 사람이 동거하던 아파트에서 나가야 하는 시점을 유예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을 것이다. 법적 보호자와 장례 책임자를 생활동반자로 할지 여부 정도는 서로를 생활동반자로 지정할 때 결정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가정하에 A씨는 B씨의 간병에 참여할 수 있고 B씨의 장례를 치를 권리를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유산은 생활동반자법이 통과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게 없다. 해당 책에서 제시한 법안에서는 생활동반자에게 상속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재산을 A씨 앞으로 남긴다는 유언장을 작성하면 A씨는 법정 유류분을 제외한 만큼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다. 혹시라도 생활동반자에게 상속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법안이 통과된다면 동반자의 상속순위에 따라 유언 없이도 B씨의 재산을 A씨에게 넘기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정리하자면 생활동반자법과 이를 뒷받침하는 법안이 통과되었고 B씨가 A씨를 장례 담당자로 지정했다면 A씨는 40년 동안 같이 살았던 본인의 파트너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할 수 있고 본인 집에서 당장 쫓겨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법이 최소한의 보호막을 쳐주는 셈이다. 만약 B씨가 재산상속에 대한 유언장을 미리 작성해 두었다면, 혹은 생활동반자에게 상속권을 부여하는 법이 통과되면 본인 몫의 재산까지 상속받을 수 있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은 변화 아닐까?
5.
우리는 보통 죽음을 ‘슬픔’으로 인식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가 죽음을 ‘슬픔’으로 인식하게 할까? 죽은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그중 하나일 것이고, 그러한 이별이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장례식을 한다. 고인을 마지막으로 잘 떠나보내기 위해서, 고인에게 마지막 정성을 다하기 위해서. 그리고 고인이 없는 일상을 살아갈 준비를 하기 위해서.
그런데 이러한 장례식에 절차가 군데군데 붙어가면서 장례식을 까다롭고 획일화된 예식으로 만들어버렸다. 이 글에서는 ‘유족’과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관해서만 얘기했지만, 성별별로 분리된 역할, 촌수 등으로 구분되어서 적힌 유족들의 이름 등 이 글에서 굳이 밝히지 않은 혹은 우리가 아직 모르고 있던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적어도 본인의 장례식을 어떻게 진행했으면 좋겠는지 미리 주변 사람과 협의해 놓는 것, 그리고 우리나라 법체계를 고인의 의사를 장례에 그대로 반영할 수 있게끔 수정하는 것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는 있겠다. 그렇게 되어 사람들이 고인을 보낼 때 장례식의 절차에 관련된 고통을 더 받지 않기를 기원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죽음과 같이 오는 여러 가지 사안들에 고인 그리고 그와 가까운 사람들의 의사가 더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어서 모두가 이전보다 더 나은 죽음을 맞이하고 그 이후를 설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과정에서 생전에 본인의 죽음을 인식하고 이를 준비하는 문화가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죽은 뒤의 일을 온전히 남에게 맡기는 것보다 본인 사후에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지 미리 얘기해준다면 떠나는 사람과 떠나보내는 사람의 부담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죽음에 대해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죽음이 가져다주는 정신적인 충격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런 막연한 기대를 해본다.
출처 :
- 황두영, 『외롭지 않을 권리』, 시사iN북, 2020
-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6호, 제12조
- 김영호의원 등 11인 발의,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2024160, (2019. 12. 3) [임기만료 폐기]
- 김선호, 40년 동거한 여고동창생의 비극적인 죽음(종합), <연합뉴스>, 2013.10.31
- 주보배, 전송화, 연합뉴스 [인턴액티브] “39년간 산 남편이 있는데 무연고 장례라니” <연합뉴스>, 2019.10.13.
시신을 수의로 갈아입힌 다음, 베나 이불 따위로 싸다. (ref : 표준국어대사전) ↩︎
신주를 모셔 두는 자리 (ref : 표준국어대사전) ↩︎
유족이 있는 장례식에 한한다. ↩︎
여기서 ‘모든 과정에 참여한다’라는 뜻은 ‘한 사람이 모든 과정에 참여한다’라는 의미가 아닌 ‘모든 과정에 유족 중 한 사람은 참여한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
황두영, 『외롭지 않을 권리』, 시사iN북, 2020, p.264 ↩︎
이상 사례 출처 : 주보배, 전송화, 연합뉴스 [인턴액티브] “39년간 산 남편이 있는데 무연고 장례라니” <연합뉴스>, 2019.10.13. (사례를 직접 제시하지 않고 요약해서 제시했습니다.) ↩︎
김영호의원 등 11인 발의,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2024160, (2019. 12. 3) [임기만료 폐기], 1. ↩︎
나아 보인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주관이다. ↩︎
황두영, 『외롭지 않을 권리』, 시사iN북, 2020, p.269-270 ↩︎
같은 책, p.172-173 ↩︎
김선호, 40년 동거한 여고동창생의 비극적인 죽음(종합), <연합뉴스>, 2013.10.31 ↩︎
이 글에서는 황두영, 『외롭지 않을 권리』에 제시된 법안을 따른다. (생활동반자법 단일 법안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