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 기획: 스에, 미리내
  • 참여: 스에, 스타더스트, 미리내, 선랑, 실눈
  • 채록: 스에, 스타더스트, 미리내
  • 정리: 스에

우리가 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들의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요? 얼핏 보면 모두에게 공평할 것 같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은 퀴어의 죽음, 나의 죽음을 함께 모여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았습니다.

  • 본 집담회는 2020년 7월 16일 목요일 저녁 Zoom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습니다.

A. 들어가기

Q. 집담회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스에: 저는 평소에도 죽음학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아서, 죽음이라는 기획 자체가 사실은 저의 개인적인 덕질(?)을 하고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거든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죽음이 얼핏 보면 공평해 보이지만 사실은 이성애 중심이나 정상가족 중심적인 면모가 많더라고요. 특히 법적인 문제에서요. 그래서 그런 면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보는 시간이 있으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집담회를 기획했습니다.

선랑: 사실 저는 아직 죽음이 뭔지 잘 모르겠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무엇보다도 이런 주제로 이야기해볼 기회가 많이 없을 것 같아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스타더스트(이하 스더): 저는 평소에 죽음에 대해 할 말이 많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궁금하기 때문에 참여했어요.

실눈: 저는 심심해서요.

미리내: 우리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할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 집담회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싶어서 집담회 기획에 참여하였습니다.

Q. ‘죽음’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스에: 저는 죽음이 안식과도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거기 가서 편히 쉬세요.”라는 말을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사는 게 많이 힘들면 죽음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스더: 저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자살인데요. 제 주변에는 자살 충동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실제로 지인이 자살 시도를 해서 병원에 실려 갔다든가 건너서 아는 사람이 자살해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종종 접하거든요. 평소에도 다들 자살 충동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저에게는 자살이 멀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그런 개념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스에: 역시 평균 수명 40년의 집단답네요. 저는 한국인들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터부시하면서, “더워 죽겠다, 추워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처럼 죽겠다는 표현을 왜 이렇게 많이 쓰는지 문득 궁금해졌어요. 한국인에게는 죽음이 어떤 걸까요?

미리내: 요즘에는 100세 시대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희가 아직 다 20대다 보니까, 그런 면에서는 죽음이 나에게는 멀어 보이지만, 어떨 때는 가까이 있다고 느낄 때도 있는 그런 이상한 존재인 것 같아요.

스에: 맞아요. 저는 비관적이라서 솔직히 우리가 매일 살아서 만나는 것도 기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교통사고 같은 일이 일어날 확률은 높지 않지만, 우리에게 일어나면 그건 100퍼센트이잖아요. 저는 이런 불안을 늘 인지하고 있어서 많이 힘든 것 같아요.

스더: 저는 최근에 건너 알던 지인이 사고사로 세상을 떠난 적이 있었어요. 20대가 세상을 떠나면 주로 자살이었는데, 그게 아니라서 어쩌면 우리가 갑자기 사고사로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어요.

선랑: 저는 ‘죽음’ 하면 ‘끝’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데요. 그래서 죽음이 상징하는 바가 극단(極端)이라고 생각해요. 아까 스에님께서 왜 한국인들이 죽겠다는 말을 자주 쓰는지 궁금하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그 이유가 죽음이 상징하는 바가 극단적인 상황이라서 그런 말을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인생을 내가 주인공인 드라마로 비유를 하잖아요. 그러면 그 드라마의 엔딩이 죽음인 셈인데, 인생은 드라마와는 달리 작가가 정해진 게 아니라서 그 엔딩이 어떨지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뭔가 ‘죽음’ 하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 좀 혼란스럽네요.

B. 나의 죽음: 느낌

Q. “나는 언젠가 죽는다”라는 말이 가장 잘 와닿을 때는? 거기에 대한 생각은?

선랑: 주변 사람의 죽음을 경험했을 때인 것 같아요. 최근에 초등학교 때는 친했지만 그 이후로는 연락을 안 했던 친구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동안 연락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이상하게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아서 당황스러웠어요. 나도 이렇게 갑자기 죽을 수도 있고, 사람들이 내 죽음에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더: 저는 지인이 “나는 오히려 영생하고 싶은 편에 가깝다.”는 말을 했을 때 오히려 나는 언젠가는 죽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구도 멸망하고 태양계도 멸망한 뒤에도 우주 공간을 떠도는 존재가 되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죽겠지요.

미리내: 저도 가까운 사람의 장례식에 갔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외에는 우울감이 들거나 자존감이 낮을 때 그런 생각을 해요. ‘죽고 싶다’와 ‘나는 언젠가 죽는다’가 다를 수 있지만, 죽을 수 있으니까 내가 죽고 싶다는 감정이 들지 않을까 싶어요.

스에: 저는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에요. 교통사고나 강력범죄처럼 단지 거기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의도치 않게 인생이 끝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Q.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3가지가 있다면?

스더: 저는 제 돈을 다 털어버리고 죽고 싶어서, 친한 친구들에게 5만 원씩 주면 좋을 것 같아요. 또 죽기 전에 트위터 계정을 넘겨야 해요. 사람들은 보통 자기 계정이나 기록을 없애고 싶어 하는데, 저는 제 기록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 SM 용품은 처분하고 죽어야겠어요. 제가 죽고 나서 부모님이 방 정리하다가 채찍 같은 걸 찾으면 얼마나 어색하겠어요.

선랑: 저는 죽기 전에 찻집을 여는 게 꿈이고요. 삶을 정리하기 위해 죽기 직전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제 소중한 물건들을 하나씩 나눠주고 싶어요.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예정된 죽음이어야 하니까 사실상 불가능하겠죠.

스에: 저는 판타지 소설 쓰는 취미가 있어서, 그걸 다 쓰고 출판해서 친구들에게 뿌리고 싶어요. 그리고 이번에 코로나 때문에 졸업사진을 못 찍었는데, 언젠가는 날 잡고 메이크업도 받고 옷도 골라서 근사한 프로필 사진을 찍고 싶어요. 또 만으로 27년 4개월 25일이면 태어난 지 10,000일이라고 하네요. 저는 파티 같은 것을 잘 못하지만, 그 날만큼은 10,000일 파티를 열고 싶어요.

미리내: 일단 혜성이나 개기일식을 보고 죽고 싶어요. 그리고 죽기 전에 인터넷 계정이나 글, 논문 같은 제 기록들을 정리하고 싶어요. 나머지 하나는 지금 딱히 생각나지 않네요.

Q. 한 달 후에 내가 죽는다면?

스에: 이 질문이 보통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서 쓰이는데,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저는 제가 언제 죽을지 알려줘서 고마울 것 같거든요. 죽음이란 것이 갑작스럽기 때문에 대비하기 어렵고 혼란스러운 건데, 한 달 후라고 정해져 있으면 내 물건도 정리하고, 친구들에게 인사도 하고, 최대한 덜 고통스럽게 죽을 방법도 찾는 등 신변 정리를 열심히 할 것 같아요.

스더: 저는 오히려 무서울 것 같아요.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 데드라인까지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이 클 것 같아요. 그리고 실제로 그동안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는 금전과 자원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사실상 일상이 그다지 달라질 거 같지 않아요.

선랑: 저는 스에님과 생각이 비슷해요. 병이 있어서 시한부 판정을 받은 거라면 제약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냥 한 달 후에 죽는다면 오히려 고마울 것 같아요. 준비할 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좋으니까요. 제 주변 사람들이 받아들일 시간도 있고요.

미리내: 저도 비슷해요. 아마 한 달 동안 거의 준비하는데 시간을 쓰지 않을까요. 실제로 저 말을 들으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그냥 그러려니 할 것 같아요. 아주 담담하지도, 그렇다고 패닉에 빠지지도 않을 것 같아요.

Q.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죽음은?

실눈: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죽음은 통제할 수 있는, 그리고 고통이 없는 죽음이에요.

스더: 질소를 흡입하거나 프로포폴을 이용하여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미리내: 저도 고통이 없는 게 가장 중요해요. 저는 평소에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전제하에, 자는 동안의 심장마비처럼 인식하지 않을 수 있는 죽음이 좋아요. 그러려면 평소에 죽음에 대한 대비를 아주 잘 해야겠지요.

선랑: 저도 고통이 없는 것이 중요하고, 아까 말한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을 다 이루고 죽는 죽음이 좋다고 생각해요.

스에: 저도 고통이 없는 게 가장 좋긴 한데, 한편으로는 살신성인(殺身成仁)에 대한 환상이 있어요. 고통이 없으면 좋겠지만 다른 사람을 구하고 죽는다면 더 기쁘게 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스더: 저도 중학생 때쯤에는 무언가를 위해 희생하며 죽고 싶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실눈: 스에님과 스더님은 일종의 대의를 위해 죽는 것도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두 분이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만큼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덕목은 무엇인가요?

스더: 저는 퀴어·여성 인권을 위해서 죽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릴 때 했던 생각이라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아요.

스에: 저는 대의나 신념보다는 다른 사람의 목숨을 위해 죽고 싶어요.

Q.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죽음은?

스더: 저는 오히려 지금 생각해보니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최악일 것 같아요. 의도는 좋지만 나중에 추모 당하고, 사람들이 언급을 하고, 제가 죽은 날이 기념될 텐데, 그러면 죽은 뒤에도 계속 기억되잖아요.

선랑: 제가 생각하는 최악의 죽음은, 가령 목욕하다가 미끄러져 머리를 부딪쳐 죽는 것처럼 어이없이 죽는 거예요. 누가 들었을 때 ‘아니, 그렇게도 죽는다고?’ 하며 피식 웃게 되는 그런 죽음이 최악인 것 같아요.

실눈: 저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범죄의 표적이 된다든가 해서 타의로 죽는 것이고요. 다른 하나는 제가 대의를 위해 죽었는데 나중에 보았을 때 그것이 잘못된 대의였을 때에요. 그런 경우 역사적으로 제 죽음은 인류에게 해악이 되는 거잖아요.

미리내: 저는 아픈 게 싫어요. 감당 안 될 정도의 고통은 싫어요.

스에: 저는 사고로 인해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있다가 죽는 게 최악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전신 3도 화상을 입어 한 달 이상 입원해 있다가 죽거나, 지진이 나서 건물 잔해에 깔려 일주일 동안 살아 있다가 목말라서 죽는 것이요.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더 싫어요.

실눈: 스에님께 질문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고의 죽음과 최악의 죽음을 섞어서, 다른 사람을 위한 거지만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하는 죽음은 어떨까요?

스에: 그 상황이 되어봐야 알겠지만, 명분이 있어서 정신적 고통은 덜할 것 같아요. 육체적 고통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요. 최고의 죽음도 최악의 죽음도 아닌 것 같아요.

Q. 나는 죽은 후에 어떻게 기억되고 싶나요?

미리내: 저는 기억되고 싶지 않아요. 기록도 전부 처분하고, 논문 같은 경우도 제 이론만 남았으면 좋겠어요. 저랑 가까운 사람들은 제 의사와 상관없이 저를 기억하지 말지 선택하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스더: 제가 죽고 나서 사람들이 저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면 슬플 텐데, 저는 그게 싫어서 사람들이 저의 존재도 저의 죽음도 잊고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걸로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

스에: 저는 솔직히 다들 저를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너무 좋게 기억되면 사람들이 슬퍼한다는 게 마음 아프지만, 그래도 저는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게 더 좋아요. 하지만 솔직히 산 사람을 떠올릴 때도 본인은 생각하지도 못한 이상한 점을 착즙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사실 이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 같아요.

실눈: 저는 반대로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떠올렸을 때처럼, 제가 죽은 후 사람들이 저를 떠올리면 그 친구는 남을 도와줘서 좋은 친구였다 같이 구체적인 생각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그 친구는 참……하고 더 말을 잇지 못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마치 신과 같은 존재처럼.

선랑: 저는 다른 사람이 생각했을 때 구체적으로 내 인생의 어느 순간을 함께 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C. 나의 죽음: 현실

Q. 내가 갑작스럽게 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가장 걱정되는 문제는?

스에: 이런 문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내가 갑자기 죽으면 그 소식이 누구를 통해, 어떻게 큐이즈에 전달될 수 있을까요?

실눈: 요즘은 세상이 좋아서, 누가 죽으면 상조회사에서 휴대폰에 저장된 모든 번호로 문자를 쏴줄걸요? 유족이 번호를 보고 문자를 보낼지 안 보낼지 결정하는 거지만요.

선랑: 저는 최근에 초등학교 때 알고 지낸 친구가 죽었을 때 따로 알고 지내던 다른 친구가 발인 날짜가 적힌 카톡을 보내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보내는 경우도 있어요.

스에: 저는 제 죽음이 원치 않는 사람에게 직접 문자로 가는 게 싫어서, 그런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평소에 연락처 정리를 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더라고요.

스더: 저도 연락 끊긴 어플 사람이나 시범 과외만 갔던 학부모님들에게 연락이 가면 이상해서 직접 문자가 보내지는 건 좀 그래요. 큐이즈 사람들 같은 경우는 어차피 부모님이 제가 큐이즈 활동하는 것을 알고 있어서 어떻게든 소식이 전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트위터 계정도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미리내: 저는 제가 죽고 나서 제 지문만 확보되면 누가 언제든지 카톡에 들어가 큐이즈 관련 톡방을 확인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뿐만 아니라 다른 큐이즈 사람들까지 다 까발려질까 걱정돼요.

실눈: 사실 저는 가장 그리고 유일하게 걱정되는 것이 부모님이에요. 만약 제가 부모님보다 일찍 죽으면 부모님이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것도 걱정되지만, 누가 집안을 먹여 살리는지가 가장 걱정돼요. 그리고 퀴어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저는 제가 죽으면 제 부모님이 저를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 ‘실눈은 이런 사람이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어요. 제 부모님은 저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니까요.

스에: 가족 걱정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생계보다는 정신적인 부분에서의 걱정이 커요. 특히 엄마가.

스더: 저는 동생이 제일 걱정돼요.

스에: 저도 사실 그래요. 저는 제가 죽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반대로 동생이 그렇게 먼저 죽는다면, 전 정말 미쳐버릴 것 같거든요. 동생도 아마 비슷할 것 같아서, 동생한테 우리 죽을 거면 같이 죽자고 이야기했죠. 결론이 이상한데 어쨌든 그렇게 되었네요.

실눈: 우리가 죽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타인인 거군요. 이게 좀 재미있네요. 한 분 정도는 개인적인 이유를 댈 줄 알았어요. 예를 들면 내가 못 한 무엇이 문제다, 이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선랑: 저도 지금까지 나왔던 이야기와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양면적인 생각이 드는데, 저는 제가 죽으면 주변 사람들이 너무 슬퍼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슬퍼했으면 좋겠거든요. 어차피 내가 죽으면 모르겠기는 하지만,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 해도 좀 슬플 것 같아요.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이 충격을 받아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도 걱정됩니다.

Q. 사전의료의향서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연명치료는 어떻게 받고 싶나요?

사전의료의향서란, 연명 의료 및 호스피스 병동 입원 여부에 관한 의향을 미리 작성해놓는 문서를 말합니다.

호스피스(hospice)란, 죽음이 임박한 환자의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해 그들을 간호하는 의료시설을 말합니다.

스에: 우리가 자살하거나 요절하는 것이 아니라 좀 늙어서 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 필요한 것이겠죠? 저는 예전에 자세한 연명 의료 선택사항을 본 적이 있는데,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일단 기관지 절제 후 튜브 삽입을 하면서까지 숨 쉬는 건 별로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평소에도 비염에 시달렸는데 내가 굳이 그렇게 하면서까지 숨을 쉬어야 하나 싶어서요. 호스피스 들어갈 수 있으면 저는 가면 좋을 것 같아요. 아직 작성은 안 했는데, 언젠가 마음의 준비가 되면 쓰러 갈 것 같아요.

스더: 저는 작성하면 참 좋을 텐데, 귀찮아서 안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저는 괜히 고통스러운 삶을 더 연장하는 것이 별로라서 연명치료는 정말 하고 싶지 않아요. 호스피스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을 안 해봐서 한 번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고요. 언젠가는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미리내: 저도 집담회 준비하면서 사전의료의향서에 대해 처음 들었고요. 가능하면 연명치료는 받지 않고, 호스피스는 들어가는 쪽으로 할 것 같아요.

선랑: 저도 사전의료의향서는 처음 들어보는데, 들어보니까 쓰는 쪽이 좋겠네요. 왜냐하면 저는 연명치료도 안 받고 싶고, 호스피스도 안 들어가고 싶거든요. 그때가 되면 제가 원하는 삶의 모습대로 살 수가 없어 그럴 바에는 죽는 게 낫지 않나 싶어요.

실눈: 사전의료의향서라는 단어 자체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미리 연명치료에 대한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서류가 있음은 알고 있었어요. 사실 저는 최고의 죽음을 통제할 수 있는 죽음이라고 생각해서 적극적 안락사를 하고 싶어요. 제가 더는 발전하지 못하는 단계가 오면 그냥 빨리 제 할 일을 해치우고 안락하게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도 나의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들어가는 자원을 다른 좋은 곳에 분배하는 것이 인류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Q. 장기기증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가족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장기기증의 종류에는 뇌사기증, 사후기증, 생간이식이 있는데, 이 중 죽음과 관련된 것은 뇌사기증과 사후안구기증이 있습니다. 현행법상 본인이 생전에 기증희망등록을 했어도, 배우자 등 가족 한 명의 동의가 없으면 기증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선랑: 저는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장기기증도 뇌사 상태에, 장기가 건강해야 하니까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못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가족, 특히 부모님은 싫어하실 것 같아요. 그래도 기증희망등록하고 통보해야죠.

미리내: 저도 선랑님과 비슷하게 기회가 오면 할 거고요. 저는 흡연자가 아니니까 폐 정도는 건강하게 남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가족들은 성향상 제가 한다고 하면 뜯어말리지는 않을 것 같아요.

스에: 저도 비슷한 것 같아요. 부모님도 걱정은 하겠지만 ‘뭐 그러라면 그래라.’라고 할 것 같은데, 역시 등록하고 통보하는 게 설득이 빠르겠죠. 그렇지만 아직 부모님께 말씀드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 아직 등록을 못 했어요.

스더: 다들 하면 좋다고 말하지만,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저희 부모님은 반대하지 않을 것 같지만, 뭔가 결정을 내리고 등록 서류를 써서 내야 하는 과정이 부담스러워요. 그리고 저는 제 몸을 제가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유지할 자신이 없어요.

실눈: 저는 사실 제가 죽기 전에는 장기기증이 사라지고 장기 배양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 생각을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하는 게 좋죠. 가족들은 관심이 없어요. 그렇지만 내가 아무것도 못 느끼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지만 뭔가 그 과정에서 거부감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그걸 이기고 저는 해낼 거예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면서 끝냅시다.

Q. 나의 유언장에는 어떤 내용을 쓰고 싶나요?

스더: 저는 유언장을 써본 적이 있는데, 내 돈은 어떻게 썼으면 좋겠고, 내 트위터 계정은 실눈에게 넘겼으면 좋겠고, 그런 내용을 썼던 것 같아요. 지금 보니까 친구들에게 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랑, 제가 자살을 해도 부모님 탓이 아니라는 내용이랑, 동생한테 가장 미안할 것 같다는 내용이 있네요. 어떤 사람이 나한테 갚아야 할 돈이 있으니까 연락이 오면 받으라는 말과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줄 물건이 택배로 오면 그 사람에게 주라는 말도 적었어요.

스에: 되게 알차다. 일단 그 내용이 다 들어가 있었다는 거잖아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재산이랑 SNS 아닐까? 그래서 저는 그런 내용을 쓰고 싶어요. 아, 물론 ‘누구, 누구야, 고맙고 사랑한다.’라고 쓰면 감동의 눈물이 줄줄 흐르겠죠. 그렇지만 그런 실용적인 면을 써주는 게 주변 사람에게는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실눈: 저는 제 죽음이 저의 정신적인 성장이 끝날 때 제가 스스로 끝내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잖아요. 그래서 유언장의 내용은 내가 고통스러워서 죽는 것이 아니라, 이러이러한 사고 과정을 거쳐서 죽게 된 것이니 너무 괘념치 말아라, 라고 말을 할 것 같고. 장례식을 어떻게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들어갈 것 같아요. 저의 잡동사니들이 어떻게 되든지 뭐 그건 크게 관심이 없을 것 같네요.

미리내: 저는 남길 재산이 있다면 그걸 법적인 절차를 거쳐 유산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남길 것 같고요. 나머지는 그냥 컴퓨터에 써놓으면 될 것 같은데, 제가 갖고 있는 많은 책과 잡동사니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내 부고를 어떤 통로를 통해 알릴지 그리고 누구에게는 알리고 누구에게는 알리지 말 것인지, 휴대폰이랑 온라인 계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장례식은 어떻게 치르고 시신은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는지 적어놓을 거예요. 저는 유언장을 하나의 문서로 적는 게 아니라 법적인 효력을 지니는 문서 하나, 가족이랑 가까운 사람에게 남기는 것 하나, 다른 그룹에게 각각 하나씩 해서 유언장이 내가 죽은 후에 어떻게 공개될 것인지까지도 설계를 해놔야 할 것 같아요.

선랑: 저는 유산에 대한 이야기랑, 장례 방법이랑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해 달라, 이런 것도 쓰고 싶고, 그다음에 인생에서 고마웠던 일이나 사람들에 대해 쓸 것 같아요. 왜, 죽고 나면 말 못 하는 게 있잖아요. 고마웠던 일을 평소에는 잘 이야기 안 하잖아요. 그래서 언젠가는 유언장을 쓰는 시점에서 생각나는 고마운 일에 대해서 좀 쓰고 싶어요.

유언이 법적인 효력을 가지려면, 법에서 정한 방식에 따라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변호사에게 문의하여 공증을 받는 것입니다. 유언으로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고 자기의 재산상 이익을 타인에게 남기는 것은 ‘유증’이라고 하며, 유증은 법인을 포함한 누구든지 받을 수 있습니다.

Q. 남길 재산이 있다면 유산 상속은 어떻게 하고 싶나요?

스에: 저는 생활비 통장은 부모님이 알아서 하고, 목돈 모아둔 통장의 1/3은 동생을 주고, 1/3은 큐이즈(퀴어플라이)에, 1/3은 띵동에 기부하고 싶어요. 잡동사니도 주변 사람에게 나누어주고요.

스더: 옛날에는 양심상 부모님이 나에게 들인 돈이 있는 만큼, 내가 남긴 재산만큼은 쓰시는 게 맞지 않나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기부를 하고 싶어요. 아직 어디에 할지는 잘 모르겠고요. 그리고 저는 사람들이 제가 죽어서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뭔가 이득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친구들에게 5만 원씩 돌리고 싶어요.

선랑: 저는 지금 제가 갖고 있는 재산이 거의 부모님 것이기 때문에 부모님한테 드리고 싶어요. 부모님이 그 돈으로 그냥 여행이나 가셨으면 좋겠어요. 그 외에는 경우에는 저를 기억할 수 있는 물건을 몇 가지 적어서 나눠주고 싶네요.

실눈: 사실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내가 언제 죽는지 그리고 내가 죽을 때 누가 남아있을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저는 특이하게도 굉장히 오래 살고 싶기 때문에, 제가 죽을 때가 되면 제 가족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 솔직히 제 친구들이 저보다는 빨리 죽을 것 같거든요. 그러면 다 기부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큐이즈 같은 데에는 기부를 안 할 거예요. 님들이 다 근시일 내의 죽음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큐이즈가 그때까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저는 그렇지 않아서, 제가 죽을 때쯤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좋은 단체에 싹 다 기부하고 죽고 싶어요.

미리내: 저도 이 질문 처음 봤을 때 지금으로부터 멀지 않은 시점에 죽는다고 가정하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월세 모아둔 통장은 원래 부모님 돈이니까 부모님 드리고, 다른 통장은 큐이즈와 제가 하는 다른 동아리 주고,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단체에도 줄 것 같아요. 그리고 늙어서 죽을 때에는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스에: 저도 사실 제가 나중에 늙어 죽을 때도 생각을 하긴 했었어요. 그런데 저는 다 기부를 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거든요. 저도 제 동생도 퀴어이고 결혼을 안 할 테니까, 제가 아주 늙으면 저와 가장 가까운 다음 세대가 제가 좋아하는 5촌 조카들이 될 것 같은데, 걔네를 위해서 공증이라도 작성하려고요.

법적으로 유효한 유증이 있는 경우 유증이 상속보다 우선이 되며, 유증이 없는 경우 법률상 상속순위는 ① 자식·손자와 배우자 ② 부모·조부모와 배우자 ③ 배우자 단독 ④ 형제자매 ⑤ 4촌 이내 방계혈족(삼촌, 고모, 이모, 사촌 등) ⑥ 특별 연고자(사실혼 배우자 등) ⑦ 국가 순입니다. 유증이 있더라도 자식·손자, 법적 배우자, 부모·조부모, 형제자매 등 특정 상속인에게는 반드시 재산의 일정 부분을 남겨야 하는데, 이를 ‘유류분’이라고 합니다.

Q. 나의 장례식은 어떻게 치렀으면 하나요?

스더: 만약 제가 젊었을 때 죽는다면, 제 장례식은 친척들이 대충 평범하게 하고 넘길 것 같아요. “어휴, 쯧쯧. 쟤는 젊은데 왜 죽었대.” 뭐 이런 얘기나 하면서 대충 진행하고 대충 화장하고. 그런데 저는 제 장례식은 저랑은 별로 관계가 없고,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건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니지 않나? 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트위터식으로 말해보자면, 사람들이 모여서 가인의 Carnival이나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공식적인 장례식 말고는 제가 죽고 나서 사람들끼리 제가 좋아하는 노래 들으면서 술 파티하면 재밌을 것 같긴 해요. 공식적인 장례식에 오는 건 별로고.

선랑: 저는 공식적인 장례식에서 제가 변화를 줄 수 있는 건 딱히 없을 것 같아요. 그거 말고 제가 친했던 여러 무리들끼리 그냥 다 같이 모여서 재밌게 노는 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너무 슬프진 않았으면 하지만 저를 기억해줬으면 좋겠기에, 그런 방법으로 기억되면 좋을 것 같아요.

미리내: 제 시체를 처리하는 공식적인 장례식은 사람들이 조문을 받느라 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법적인 최단 장례 기간이 2일장이라 2일장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는 다른 분들과는 반대로 저를 아는 그룹들이 안 모이고 따로따로 했으면 좋겠어요.

실눈: 저는 제가 살아있을 때 장례식을 했으면 좋겠는데, 사람들이 모여서 다 같이 나무를 심는다든가, 5만 원씩 모아서 기부한다든가 등 좋은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장례식장에서의 공식적인 장례식 말고, 제 인생영화 한 대여섯 편 골라서 영화제 같은 걸 열고, 오고 싶으면 오고 아니면 말고 이런 형식으로 하면 재밌을 것 같아요. 스더처럼 장례식 플레이리스트로 생각해봤고요. 이걸 다 합치면 낮에는 노래 들으면서 나무 심다가 밤에는 영화 보고 가는 거죠. 저는 진짜 이게 제일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스에: 저는 사진이 예쁘게 나왔으면 하니까 영정사진을 좀 미리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리고 공식적인 장례식에 소소한 트롤을 하고 싶어요. 음식은 비건식으로 하고, 술 못 먹게 하고. 상복도 삼베 하지 말고 차라리 검은 옷에 흰 꽃을 꽂으라고 하고. 상조 회사를 끼면 솔직히 얼마나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방법을 찾아낼 거예요.

Q. 나의 시신은 어떻게 처리했으면 하나요?

스에: 저는 무덤을 절대 만들지 말라고 할 거예요. 예외가 있다면, 내가 부모님보다 먼저 죽으면 부모님이 마음을 지탱할 수 있게 납골당 정도는 허락할 수 있는데, 그 외에는 진짜 너무 싫어요. 저와 별로 가깝지도 않을 다음 세대가 괜히 친척 어른 챙긴다고 무덤 관리하는 게 너무 싫어요. 어차피 장기기증도 하고 나면 뭐가 남겠어요. 그러니까 그냥 화장터 뒤편에서 날리거나, 강에 뿌리는 건 불법 투기라고 하니까 바다에 뿌려도 상관없으니 그냥 무조건 산골(散骨)했으면 좋겠어요.

선랑: 장례 방법 중에서 뼛가루를 만들어서 보석으로 만드는 방법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하거나, 아니면 수목장도 괜찮을 것 같아요. 수목장을 하면 납골당처럼 기억할 수 있는 장소가 생기잖아요. 아, 그리고 제사는 절대로 안 지냈으면 좋겠어요.

스더: 저도 무덤은 절대로 없었으면 좋겠고, 그냥 사람들이 관리하거나 처리하는 데 최소한의 노력이 들 수 있는 방식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제가 생일 때마다 동해 바다에 가서 해 뜨는 걸 본 만큼, 뼛가루를 동해 바다에 뿌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미리내: 이렇게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저도 화장한 후 산골하거나 바다에 뿌리거나 해서 제가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골 같은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아요.

실눈: 저도 비슷한데,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제 시신의 일부라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그냥 장의사 같은 분만 보고 빨리 없애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도 무덤이나 납골당 같은 거는 별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 정신으로 존재했으면 좋겠어요.

Q. 내가 미리 써보는 나의 묘비명은?

실눈: 이 질문 저의 개인적인 철학에 위배되는데 어떡하죠? 전 무덤을 만들고 싶지 않은데.

스에: 그렇다면 묘비명이라기보다는, ‘내 인생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혹은 ‘어떤 말을 남기고 싶은지?’라고 생각해봅시다. 저는 자우림 노래 중에서 “슬픔이여 이젠 안녕” 이걸로 할래요.

스더: 저는 글은 아닌데 제 목 뒤에 있는 타투로 할래요. “뇌에 뿌리를 박고 거꾸로 자라 피어난 꽃”을 새겨주면 좋겠네요.

미리내: 저 그냥 이렇게 써주세요. “잘 구경하다 갑니다.”

선랑: 저는 “슬픈 기억은 두고 가세요.”라고 하고 싶어요. 묘비명이라고 하면 그래도 사람들이 저를 보러 왔을 때 보는 거니까요.

실눈: 제 인생을 담아내야 하니까 글은 불가능할 것 같고, 저는 모스크 벽에 있는 “아라베스크 무늬”로 할 것 같아요. 무의미를 뭔가로 채우려고 노력한 거잖아요. 그 의식이 저랑 비슷한 것 같아서.

D. 정리하기

Q. 집담회에 참여한 소감은?

미리내: 저는 이번 집담회를 준비하면서 어느 정도 “아, 내가 죽기 전에 이런 것 정도는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어요. 그런데 내가 지금 당장 아니면 근시일 내에 죽는다는 가정을 깔고 있었는데, 그런 점에 있어서는 실눈님의 이야기가 저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었어요.

실눈: 제가 그냥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내용을 이렇게 의견으로 말하고 나누게 되니까 제 삶의 태도 같은 것들이 조금 더 확고해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나왔던 이야기가 우리가 퀴어인 것과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약간 궁금하기도 해요.

스에: 오늘 집담회에서는 우리의 퀴어함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왔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만약에 퀴어가 아니라면, 내가 죽고 나서 퀴어 친구들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아니면 5촌 조카에게 어떻게 내 재산을 물려줄 수 있을지 등의 문제를 고민할 필요는 없잖아요. 이렇게 죽음이라는 것도, 특히 법률적인 문제에서 우리에게 불합리한 점이 많다는 것을 짚어보고 싶었어요.

선랑: 저는 제가 개인적으로 죽음에 대해 별생각이 없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야기를 해보면서 ‘어, 그래도 우리가 행복한 죽음을 원하는구나. 나도 그렇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우리가 퀴어라서 어려운 죽음이 아니라 행복한 죽음을 원하기 때문에 집담회가 이렇게 흘러간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스더: 저는 선랑님과는 반대로 제가 죽음에 대해 생각을 되게 많이 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다들 저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았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 얘기를 들어볼 수 있어서 좋았고요.

미리내: 그리고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면, 현행법상으로 시신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부모님이나 동생, 자식 등 거의 정상 가족 구성원으로 한정되어 있는데, 이것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지금은 없어요. 만약에 가족이 시신 인수를 못 한다면, 저는 무연고자가 되어서 지방자치단체에서 처리하게 되는 거죠. 그런 경우는 좀 아닌 것 같아서요. 이 부분을 잘 파고들면 동성혼 법제화나 생활동반자법을 이야기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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