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정장 차림

스에
January 1, 0001

코스프레나 드랙 같은 취향이 없어서 그런지, 내 의생활은 딱히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평범하다’고 말하기는 좀 망설여진다. 내 옷장에도 지하상가나 SPA브랜드에서 산 옷이 대부분이다. 대신에 가지고 있는 소소한 아이템을 가지고 내 나름대로는 과감한 코디를 많이 한다. 연예인이나 쓸 법한 분홍색 선글라스라든가, 화려하게 반짝이는 엄청나게 넓은 부츠컷 연청바지, 어디서나 눈에 띄는 새빨간 트렌치코트 같은 걸로 꾸미고는, 그 모습으로 강의를 듣고 캠퍼스를 활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특별한 코디도 한두 번이지, 대부분은 그냥 평범한 옷으로 수수하게 입고 다닌다.

여러 가지 옷 중에서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의상을 꼽으라 하면 ‘오피스룩’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깔끔하게 똑 떨어지는 옷선, 자잘한 구김 없이 칼같이 접힌 옷깃, 단순하지만 선명한 색깔 대비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 기품과 당당함이 나를 설레게 한다. 가끔 엄마와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 한 철 입을 티셔츠를 사러 갈 때마다 엄마는 정장 재킷이나 블라우스에 눈이 돌아가는 나를 말리기 바쁘다. 가장 기본적인 검은 정장은 자칫하면 장례식 복장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금장 단추가 달리면 그 멋짐이 폭발한다. 그렇지만 역시 무난하고 예쁜 색은 그레이, 베이지, 네이비인 것 같다. 지난겨울 영어 학원에 다닐 때 강사분이 입고 오신 네이비 더블버튼 원피스가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그런데 올해 5월에 교생실습을 나가게 되면서 정장을 입고 다닐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교생실습 오리엔테이션에서 나누어준 유의사항에 있는 복장 규정은 간단하면서도 모호했다. 정장 차림. 스키니 바지, 미니스커트, 반바지, 청바지 착용 불가. 여기서 안 되는 옷차림은 명확하다. 그런데 ‘정장 차림’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기 어렵다. 예를 들어 블라우스 위에 정석적인 재킷만 입을 수 있는 것인지, 카디건을 걸쳐도 괜찮은 건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가 보통 떠올리는 그 단정한 정장의 이미지를 가리키는 것이리라.

집에 와서 옷장을 열어보았다. 그나마 좀 정장 같다고 말할 수 있는 옷은 무난한 검은 재킷 한 벌과 하얀 블라우스 한 벌이 전부였다. 하의는 사태가 더더욱 심각했다. 하필이면 올해 서랍에는 청바지가 풍년이었다. 그럴 만했다. 지금까지 정장이란 것을 제대로 입고 갈 일이 없었으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다 새로 사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닌 것 같아서 일단 엄마에게 SOS를 쳤다. 옷 사러 갈 때 명동에서 옷가게를 하시는 이모의 도움도 받기로 했다.

내 나름대로 <SPA브랜드 직장인 데일리룩 21벌 돌려입기> 뭐 이런 것도 찾아보았다. 최대한 많이 돌려 입기 위한 최소한의 구성을 재킷 2벌, 카디건 1벌, 블라우스 2벌, 치마 2벌, 슬랙스 2벌, 원피스 1벌, 구두 1켤레, 실내화 1켤레로 잡았다. 어느 비 오는 날 엄마와 이모와 명동에서 만났다. 그날 명동에 있는 거의 모든 SPA브랜드를 다 돌아다닌 것 같았다.

SPA브랜드의 좋은 점은 블라우스 디자인이 무난한 일자 라인이라는 것이다. 여성 정장 상의라고 하는 것들은 으레 잘록하게 허리 봉제선이 들어가 있기 마련이었다. 옷 만들기가 취미인 엄마에 따르면, 업계 용어로는 ‘프린세스 라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영 좋지 않은 이름이다. 대체 그 공주님들이 블라우스를 입고 노동에 종사하는 일이 있긴 하려나. 아쉽게도 검정 재킷에는 바로 그 프린세스 라인이 참 예쁘게도 들어가 있었다. 탈의실에서 블라우스와 함께 입어보니 애매하게 딱 맞아서 고민하던 찰나에, 직원이 사이즈가 좀 넉넉한 게 있는데 남성복이라도 상관없는지 물어보았다. 당연히 매우 괜찮았다. 심지어 원단도 훨씬 더 좋은 것이었다. 어쩐지 이쪽 머짧의 느낌이 나던 그 쾌활한 직원분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처음 옷을 고를 때만 해도 드디어 나도 멋진 정장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막상 정장에 어울리는 라인 치마를 사서 입으려니까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 불편한 걸 입고 출근해서 온종일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며 일해야 한다니! 슬랙스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옷을 살 때는 잘 모르고 잔뜩 쫄아서 점잖은 검정 치마와 검정 슬랙스만 샀었다. 그런데 막상 교생을 나가보니 A라인에 플리츠 스커트까지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다녔다. 단정한 건 대체 뭔지, 정장의 기준은 뭔지, 세미 정장은 어디까지 가능한 건지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정장하면 또 생각나는 것이 또 바닥을 경쾌하게 울리는 구두 소리이다. 운동화와 워커만 대충 신고 다니다가 난생처음 면접용 구두라는 것을 샀다. 앞으로 어떤 공적인 자리에서도 무난하게 신을 수 있도록, 둥근 코에 단화 수준의 낮은 굽이 있는 검정 구두였다. 한 4cm 정도로만, 단화보다는 조금 더 굽 있는 구두를 신어볼까 싶어서 나이 지긋한 신발 가게 남자 주인에게 물어보니, 돌아오는 대답이 아주 가관이었다. “아이고, 남의 집 아들 기죽어!” 도대체 왜 내가 남의 집 아들 기를 살려줘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내 키가 172cm나 되어서 하는 말이었나 보다.

실내화 착용 여부는 학교마다 다른 것 같지만, 발소리를 줄이기 위해서는 슬리퍼 하나쯤 마련해놓으면 좋다. 통굽 슬리퍼가 또 여교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아이템 아닌가. 그런데 디자인이 좀 나이 들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차라리 족저근막염 슬리퍼를 살까 하다가도, 이왕 교생실습을 나가는 거 이번에 그 통굽 슬리퍼를 안 신고 넘어가면 무언가 아쉬울 것 같아서(?) 별 기대 없이 인터넷으로 샀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서 신어보니까 이게 정말로 굉장히 발이 편하다. 교생실로 출근해서 구두를 벗고 통굽 슬리퍼로 갈아 신는 순간에는 해방감마저 느껴졌다. 나에게는 심지어 삼선보다 더 착용감이 좋은 것 같았다. 뭐니 뭐니 해도 편한 게 최고다.

마지막으로 고민 끝에 교생실습 바로 전날 미용실로 가서 갈색으로 염색을 했다. 얼마 전에 2년간의 즐거웠던 탈색 인생을 청산하고 다시 원래 흑갈색으로 돌아왔는데, 내 원래 머리 색깔이 짙은 편이라 인상이 너무 강할 것 같았다. 그런데 탈색하고 분홍색이나 파란색으로 머리를 물들이는 것도 아닌데, 갈색 염색이 가능하긴 한 건지 잘 몰라서 며칠 동안 끙끙 앓았다. 쫄보였던 나는 결국 과사까지 가서 갈색 염색이 가능할지 물어보고 나서야 염색을 할 용기를 얻었다. 염색이 끝난 뒤에는 세탁소에 들러 다림질을 맡겨놓았던 옷을 찾아왔다. 자취방에 다리미가 없는 탓이었다.

공책에 적힌 글씨들, 옷과 가격들이 적혀있다.

이렇게 해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다 돈이었다. 사회 생활하기 참 힘들다.

대망의 교생실습 첫날이 밝았다. 실습 첫날에는 왠지 단정하게 검은 정장을 입고 가야 할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학교로 향하는 교생 셔틀에는 온통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뿐이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다 같이 버스를 타고 가서, 단체로 강당에 앉아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고, 우르르 급식실에 몰려가서 급식을 먹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두 가지가 생각이 났다. 신입사원 연수 아니면 상갓집.

첫날 학교에서 교육실습지침을 나누어주었다. 강렬한 분홍색 표지가 인상 깊은 책자였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뒤쪽에 실습생 명단이 실려 있었다. 번호, 이름, 과목, 성별. 내 이름이 적힌 행에는 ‘여’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내가 입고 온 정장 치마와 신고 온 구두의 촉감이 새삼 되살아났다. 나는 여교생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그러했다.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단정하게 검은 정장을 갖춰 입고 생글거리는 얼굴 뒤의 젠더 디스포리아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여러 가지로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교생실습을 재미나게 보냈다. 학생들은 나를 굉장히 좋아해 주었고 나도 학생들을 정말 예뻐했다. 수업 시연도 계속하면 할수록 완성도가 거의 바닥에서부터 수직으로 상승했다. 정장도 매일매일 겹치지 않게 열심히 돌려 입었다. 2주 정도 지나자 다른 교생들의 복장이 점점 자유분방해지기 시작했다. 카디건은 물론이거니와 온갖 형형색색 치마가 등장했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진짜 지침대로 스키니 바지, 청바지, 반바지, 미니스커트가 아니면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동시에 나는 아침에 구두를 신은 채 셔틀을 놓치지 않으려고 전력 질주할 정도로 정장 차림에 익숙해져 갔다.

하지만 아무리 익숙해졌다고 해도 정장은 정장이다. 그걸 입으면 여교생으로 변신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함께 교생을 나간 사람 중에 꽤 잘생겼다고 생각하던 남자 선배가 하나 있었다. 이 선배를 편의상 Y라고 하겠다. Y는 잘생기고 몸도 좋고 성격도 자신감 넘치고 외향적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교생실습 첫날부터 학생들에게 인기가 폭발했다. 일부러 Y의 얼굴을 보려고 교생실에 놀러 오는 여학생들도 있었다. Y는 자기가 잘생겼다는 것도, 여자들에게 인기 많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느 날 담임 교생으로서의 과제인 학급 학생 상담을 한창 진행하면서 동료 교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Y가 나를 포함한 여성(으로 패싱되는) 교생들에게 물었다. “있잖아, 여학생들이 나를 보면 막 좋다고 하는데, 막상 내가 1대1로 상담을 하려고 하면 말을 잘 안 한단 말이지. 이렇게 행동하는 여자의 심리가 뭐야?” 있지도 않은 여자의 심리를 찾는 게 우습고 한심한 질문이었지만, 우리는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친절하게 대답하려고 애썼다. “아, 학생들이 오빠를 좋아하는데 막상 1대1로 보면 부끄러워서 그럴지도 몰라요~”

제발 네 멍청함을 그만 좀 보여줘, 라고 나는 계속 생각했다만, Y의 다음 질문은 더 끔찍했다. “근데 우리 반 여학생 하나가 교복 치마를 되게 짧게 줄여 입고 오거든. 근데 학교에 있을 때는 속옷을 안 보이려고 되게 애쓴단 말이지. 미니스커트를 입으면서 속을 가리려는 여자의 심리는 뭐야?” 이 말을 듣자 구역질이 나서 뭐라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나는 이 질문을 떠올릴 때마다 대자보라도 쓸 걸 그랬나 후회하고 있다. 그놈의 얼어 죽을 여자의 심리. 여자의 심리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지도 모르겠고,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르겠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그 와중에 나는 또 정장 치마를 입고 있었다는 이유로 졸지에 여자의 심리를 잘 아는 여자가 되어버렸고 말이다. Y에게 여자라는 것은 무슨 프로토스처럼 집단의식을 공유하는 공동체인가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이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선뜻 정장 치마를 입고 여교생 행세를 하기가 꺼려지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옷 입는 것이 제일 즐거웠던 날은 바로 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우리 반 반티는 이미 축구복으로 정해져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한 번 입고 나면 도저히 쓸 데가 없어서 굉장히 싫어했던 축구복 반티가 그 때는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편하고 시원하고 운동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니까. 그래서 무슨 디자인을 하든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기꺼이 학생들과 함께 반티를 맞추었다. 이름까지 새겨버린 반티를 바로 입고 오긴 좀 그래서 무난한 복장으로 출근한 뒤 반티로 갈아입었지만, 그날만큼은 딱딱한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고 편하게 출근할 수 있었다.

학생들과 작별 인사를 하게 될 마지막 날에는 왠지 특별한 옷을 입고 싶었다. 문득 얼마 전 보았던 검은 바탕에 빨간 꽃무늬가 들어간 하늘하늘한 원피스가 눈에 어른거렸다. 자세히 보니 살짝 비치는 재질이었지만 이미 입기로 한 거 그냥 사버렸다. 웃기는 건 기껏 그렇게 용감하게 입고 가기로 마음먹고, 막상 당일이 되니까 괜히 비치는 게 신경 쓰여서 안에 속옷을 겹겹이 입었다는 것이었다. 매우 당연하게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냥 내가 나 혼자 스스로 전전긍긍했을 뿐이었다. 아무 일도 없이, 공들여서 하고 간 화장이 지워지도록 울면서 작별 인사를 마쳤다.

그렇게 교생실습이 끝나고 나에게 남은 것은 학생들과의 즐거웠던 추억과 애증의 실습록, 기운이 빠져 골골대는 몸과 세미 정장이 절반 이상 차지한 옷장이었다.

생각해보면 교생실습 때의 나는 그야말로 초인이 따로 없었다. 학교로 가는 교생 셔틀은 매일 6시 반에 출발했다. 그래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씻고 아침도 먹고 고데기로 매일같이 머리카락에 웨이브를 넣는 것도 모자라서 마스카라와 쉐딩까지 풀 메이크업을 단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옷도 한 달 동안 한 번도 똑같이 입고 간 적이 없었다. 수업 준비까지 겹치면 4시에 퇴근해놓고 새벽 1시까지 작업하다가 불도 안 끈 채로 쓰러지고는 또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할 준비를 하곤 했다. 다시 캠퍼스로 돌아온 지금 저대로 똑같이 살라고 하면 절대로 못 한다. 특히 H라인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은 채 죽어라 뛰어갔던 그때의 나는 분명히 인간을 넘어선 무언가였던 것이 틀림없다. 그때는 사실 너무 힘들고 정신없어서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한 달 동안 이렇게 살았나 싶다.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준비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정상적인’ 교생으로 보일 수 있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실습 기간을 추억으로 갈무리하고 나서야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나마 복장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 같아서 내 나름대로 머리 빠지게 고민했던 게 고작 갈색 염색, 카디건, 꽃무늬 원피스라고 생각하니 우스웠다. 돌이켜보면 학교에서는 간단한 지침만 준 뒤 단속하지도 질책하지도 심지어 권장하지도 않았다. 정장 차림은 예외만 명확한 일종의 여집합에 가까웠다.

무엇보다도 속이 불편해지는 것은 아무도 나한테 이렇게 하라고 강요하거나 시키지 않았는데 내가 스스로 알아서 이렇게 피곤하게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단정하게 입고 다니지 않는 학생에게는 학칙에 따른 불이익이 기다린다. 벌점이 될 수도 있고 그 외 다른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 그마저도 내가 만났던 학생들은 이미 후드집업 생활복을 입고 다니고 있었다. 물론 교생도 단정하게 입고 가지 않는다면 여기저기서 눈총을 받을 거고 어쩌면 학점에서 불이익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교생은 성인이고 대학생이다. 학생들을 상대하는 것처럼 이것저것 학칙을 끌어다가 싸우지 않아도 교생들 스스로 알아서 불편한 옷을 입어주고 있으니 이보다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복장 지침이 따로 없다.

교생실습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좋았다고 대답할 것이다. 여전히 오피스룩이 좋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그렇다고 할 것이다. 나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단지 교직이 엄청난 자기검열을 필요로 하는 자리라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꼭 옷차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 가장 무서운 것은 윽박지르고 강압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스스로 자기를 채찍질하도록 유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학생들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고 아직도 보고 싶다. 하지만 한 달뿐이니 버텼지, 평생 그렇게 자기검열에 시달리다 살다가는 제명에 못 죽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좋아하는 옷도 내가 내킬 때 입어야 즐거운 법이다. 역시 나는 내 멋대로 살다가 차라리 굶어 죽는 게(?) 나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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