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軍服) - 위장(僞裝)이 가리는 것들

미리내
January 1, 0001

※ 이 글에 나오는 모든 일화에는 약간의 각색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실제로 성적 지향성과 로맨틱 지향성은 별개의 지향성이지만 비퀴어 사회에서는 두 지향성이 같이 간다고 여겨집니다. 이 글에서는 비퀴어 사회만을 다루고 있어서 이 글에서의 ‘연애’는 ‘섹스가 동반된 연애’와 동의어입니다.

Ⅰ. 서문(序文)

“하긴 너는 공부랑 연애할 것 같아.”

이번 추석 때 친척들에게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을 때 어느 사촌이 내게 해준 말이다. 부정할 수 없었다. 그들이, 아니 내 주변 사람 대부분이 봐온 나는 공부를 좋아하는, 그래서 공부밖에 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실제로 그런지는 제쳐두더라도 내가 공부에, 정확히는 현재 내 전공에 미쳐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주변 사람들에게 확실히 박혀있는 것 같다.

이렇게 살다 보니 편한 점 중 하나는 굳이 내가 에이로맨틱 에이섹슈얼임을 밝히지 않더라도 내가 연애감정을 느끼지 않고 이 때문에 연애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로 나는 지금까지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여자친구 있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한 손안에 꼽는다. 그 질문을 받아도 이제까지 없었고, 현재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받아치면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다. 이를 보면 내 의도치 않은 이미지 메이킹 전략은 꽤 성공적인 것 같다.

이런 전략이 유효한 성과를 거둔다는 것은 사회에 존재하는 2개의 고정관념

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성에게 연애적 끌림과 성적인 끌림을 느낄 것이다.
② 공부에 ‘미쳐있는’ 사람은 연애에 관심이 없을 것이다.

중 ②번이 나에게 더 크게 작용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②번보다 ①번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경우 혹은 ②번 고정관념이 깨져있는 경우 내가 아무리 ‘공부에 미쳐있는 사람’ 코스프레를 해도 ①번, 즉 내가 이성에게 관심이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시선들을 피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고등학교 때 여자애에게 문제 하나 알려준 것 때문에 내 룸메이트는 기숙사 방을 내가 걔에게 연애감정이 있는지를 밝혀내려는 취조실로 만들어버렸다. 내가 아무리 부정해도 문제 알려준 것 하나 가지고 그렇게 달려드는 그의 집착력이 경이로웠다.

그러나 대학교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 역시 ②번 고정관념이 깨져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입학 초기에는 누구에게 (연애적으로) 관심이 있는지 물어보는 질문을 꽤 받았다. 그러나 내가 그런 질문들에 단호하게 관심이 없다고 답을 한 이후에는 사람들이 나에게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대놓고 친구들에게 “난 연애나 결혼에 관심 없어.”라고 말을 해도 “그럴 수 있지.”라고 호응을 해주었으며, 그중 한 친구는 나에게 “너에게는 연애 관련 질문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느낌이 든다.”라고 내게 말해 주었다.

이렇게 나는 대학교 친구들에게 내가 연애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어필했고 위에서 보았듯이 이는 성공적이었다. ①번에 따른다면 나는 그들에게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를 ‘정상적이지 않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①번 고정관념 역시 어느 정도 깨져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보다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굳이 내 정체성을 밝히지 않고도 내 퀴어성을 잘 드러내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Ⅱ. 경험(經驗)

1. 훈련소(訓鍊所)

어느덧 입영(入營) 1X일 차 밤. 그날도 열심히 훈련해서 매우 피곤한 상태였다. 나는 저녁점호(日夕點呼)가 끝난 후 세면장(洗面場)에서 간단히 세면세치(洗面洗齒)를 했다. 그 후 모포(毛布)와 동이불을 침상(寢牀) 위에 깔아 취침(就寢)할 준비를 끝내고 미리 이불 안에 들어갔다.

소등(消燈)방송이 나오고 생활관 불이 꺼진 후에도 나와 같은 방을 쓰는 20명이 넘는 ‘전우(戰友)’들은 평소처럼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대화의 주제는 오늘도 역시 19금이다. 당시 우리 방에는 늦은 나이에 입대하신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어느 날 본인의 19금 썰을 풀었고 그 후로 ‘전우(戰友)’들은 그분에게 다른 19금 썰을 계속 요청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주제에 별 관심이 없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누워있기만 했다. 왜냐하면, 나에게 19금 썰, 더 정확히 말하면 섹스 썰은 철저히 ‘남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고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1 ‘섹스’라는 행위는 나에게 기록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전통 놀이 같은 느낌이다.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한다는데 실제로 한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보이지도 않으며, 나는 관심이 없으니까.

그렇게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도중 내 귀에 충격적인 말이 들려왔다.

“아 게이는 이해할 수 있어. 그런데 무성애자라고 성욕이 없는 사람이 있다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사람이 어떻게 성욕이 없을 수 있지?”

“에이 뻥이겠지…”

그야말로 무성애자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담고 있으면서 존재성도 부정하는 말이었다.2 그 말을 들은 순간 ‘내가 무성애자고 무성애자는 성욕이 없는 사람이 아니며, 나의 경우는 성욕이 거의 없으며 이렇게 성욕이 별로 없는 사람도 존재한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실제로 말하면 훈련소에서 커밍아웃한 게 되어버리고 이 때문에 내 군 생활이 꼬일까 봐 두려워서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2. 자대(自隊) 1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나는 자대배치를 받았다. 자대에 온 첫날 받은 여자친구 있냐는 질문에는 ‘없다.’라는 대답 한마디로 그럭저럭 넘길 수 있었다. 그 후 실무(實務)를 배우고 막내 일을 하고 가끔 들어오는 성적 혹은 연애적 질문들을 어찌어찌 넘기다 보니 어느덧 첫 휴가가 다가왔다. 출영(出營) 전날 한 간부님이 내게 휴가 잘 갔다 오라는 말을 하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휴가 나가서까지 남자들하고만 있지 말고 여자들하고 같이 있어. 안 그러면 휴가 나가는 의미가 없잖아.”3

그 말을 들은 순간 매우 당황해서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아마 그분도 당황한 내 얼굴을 보셨겠지. 다행히 다음날이 첫 휴가라 어영부영 넘어갈 수 있었다.

첫 휴가 복귀하는 날 나는 전공 서적 여러 권을 가지고 들어와 남는 시간마다 전공 공부를 했다. ‘어차피 남는 시간에 할 것도 없으니 복학 대비 공부나 하자.’라는 것이 원래 의도였지만 밖에서처럼 공부만 하면 사람들이 나를 ‘공부만 하고 연애나 성에 관심 없는 사람’으로 여겨 나에게 그런 질문들을 안 하지 않을까 하는 암묵적인 기대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 보니 우리 부서 사람들 모두 나를 ‘공부 좋아하는 서울대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서울대생이라는 사실은 자대에 오기 전에 이미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런데도 나에게 들어오는 성적인 혹은 연애적인 질문들의 빈도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그럴 때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미루고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그 상황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3. 영외(營外)

휴가를 나오면 항상 만나는 대학교 친구가 있었다. 대학교 입학했을 때부터 입대하기 전까지 자주 만나 서로의 일상을 공유했던 친구였다.4 이번 휴가에도 평소처럼 그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시작했고 대화의 주제가 어느새 군대로 넘어갔다.

◆ “근데 너 군대에선 잘 지내?”

● “그럭저럭. 일은 할 만하고. 책 들고 간 거도 조금씩 보고 있고”

◆ “다행이네!”

● “자대 간지 좀 됐으니까 웬만한 건 익숙해졌어. 그런데 부대 사람들이 나에게 성적(연애적)인 질문이나 농담 던지는 건 좀 그렇더라. 심지어 내가 관심 없다는 의사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 “어, 그런데 너를 그렇게 봐놓고도 그런 말을 한다고? 너 그런 거 싫어한다는 건(혹은 관심 없다는 건) 너랑 조금만 같이 지내봐도 알 수 있는 사실 아니야? 심지어 그런 의사를 보였는데도?”

● “그러게… 왜 그러지?”

4. 자대(自隊) 2

그 휴가를 마치고 귀대(歸隊)한 후에도 성적 혹은 연애적인 질문들은 나에게 가끔 그러나 꾸준히 들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이상형에 대한 질문이 들어왔다. 나는 평소처럼 ‘없다.’고 대답을 했고 질문이 여기서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내게 질문을 한 사람은 내 대답을 듣고는 나에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이상형 월드컵’을 시켰다.

그 ‘이상형 월드컵’은 ‘여성’ 연예인 64명의 사진을 2명씩 보여준 다음 그중에서 본인의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을 고르는 게임이었다. 선택받은 사진은 살아남고 선택받지 못한 사진은 탈락하여 마지막까지 남는 사진이 본인의 ‘이상형’이 된다. 비록 다른 사람들은 재미 삼아 하는 게임이지만 ‘이상형’이 있어야 하고 ‘이성’이어야 한다는 점, ‘이상형’을 외모로만 판단해야 하는 점 때문에 그다지 흥미가 가지 않았고 불쾌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대충대충 해서 끝내고 상황을 넘기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형 월드컵’이 끝난 후 그 사람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말이야, 넌 여자에게도 흥미 없는 거 같고 그렇다고 남자에게 흥미가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너 혹시 호르몬 이상 있니?”

그 말을 듣는 순간 듣는 순간 몸이 얼어붙어 버렸다. 왜 저 사람은 타인의 정체성을 본인이 판단할뿐더러 이성 혹은 동성에게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는 이유로 호르몬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추정할까?

Ⅲ. 해석(解析) - ‘정상’과 ‘비정상’

의아했다. 분명히 군대에서도 학교에서 생활했을 때랑 나름 비슷하게 살았는데 두 사회에서 내 에이로 에이스 정체성에 대한 반응이 확연히 달랐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우선 Ⅰ에서 언급한 고정관념 2개가 군대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알아야 했다. 이제, Ⅱ에서 언급한 경험을 이를 이용해 해석해보려고 한다.

훈련소에서의 경험(Ⅱ-1)부터 살펴보자. 애초에 훈련소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눈에 나는 본인들처럼 ‘정상적인’ 사람이어서 ①번에 의해 연애적 끌림과 성적인 끌림을 느끼는 사람으로 패싱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들이 무성애자를 없는 사람 취급할 수 있었고 본인들의 말에 그곳에 있었던 모두가 동조할 것이라 예상했던 것이다.

Ⅱ-2에도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자대에서도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정상적인’ 사람으로 패싱이 되었다. Ⅱ-1과는 다른 점은 훈련소에서는 내가 공부에 ‘미쳐있다’라는 점을 드러낼 수 없었지만, 자대에서는 그게 가능했고 실제로 실행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내게 유로맨틱 유성애적 압박이 꾸준히 들어왔다는 점에서 자대에서는 ②번이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Ⅱ-3에서는 나에게 연애적, 성적인 압박을 가하도록 해주는 체계가 군대 내에서는 작동하지만, 대학에서는 크게 작용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정리하면, 군대 안에서 나는 ‘정상적인’ 사람으로 패싱되었고, 이 때문에 ①번이 나에게 강하게 작용했으며 ②번은 나에게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몇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우선 ‘정상적인’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나는 군대에서 (혹은 대학을 제외한 곳에서)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였을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말이 어떨 때 쓰이는지 살펴보자.

병원이나 보건소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후 그 결과지를 보면 검사항목마다 ‘정상’과 ‘비정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쓰여 있다. 예를 들면 체질량지수(BMI)는 18.5 이상 23.0 미만이 ‘정상’이며 이 범위 밖은 ‘저체중’, ‘과체중’, ‘비만’으로 불린다. 즉, ‘비정상’이다. 비타민 D의 경우 혈중농도가 20.0(ng/mL) 이상이어야 정상이다. 이것보다 이하이면 ‘부족’ 혹은 ‘결핍’으로 불린다. ‘비정상’이다. 그리고 ‘비정상’ 범위에 들어간 검사항목들은 적절한 치료나 식이요법 등을 통해 ‘정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정상’이란 단어는 퀴어들을 억압하는 규범들을 나타내는 단어인 ‘이성애정상성’, ‘유성애정상성’에서도 등장한다. 이 규범들은 이성애, 유성애를 ‘정상’으로 여기고 이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몰아간다. 아직 사회에 이런 정상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동성애자’는 ‘전환치료’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직도 나오고 있으며, 무성애자들 그리고 무로맨틱들은 ‘언젠가는 성적끌림 또는 로맨틱 끌림을 느끼게 될 거야’라는 지긋지긋한 혐오발언을 아직도 듣고 있다.

이들 이외에도 ‘정상’과 ‘비정상’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사례들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어떤 특성에 대해 ‘정상’이나 ‘비정상’을 규정하고 ‘정상’인 특성들을 기본값으로 생각하며 이를 권장하고 ‘비정상’인 특성들은 고쳐져야 할 것으로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정상적’으로 여겨지는 성질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만약 ‘비정상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으면 이 사람은 ‘비정상적인’ 사람이 되고 그 특성들은 고쳐져야 혹은 개선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정상적인’ 사람으로 되돌아와야 한다고 여겨진다. 또한 ‘정상’이 디폴트(기본값)로 여겨지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람들도 디폴트로 여겨진다. 여기서 Ⅰ에서 언급했던 고정관념 2개를 다시 살펴보면 ①번은 ‘정상적인’ 사람이 가질 것이라 여겨지는 특성을 하나 제시한 것에 불과하며 ②번은 그 ‘정상성’에서 벗어나도 용인해주는 하나의 필요조건을 제시해 준 것임을 알 수 있다.

‘정상적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왜 나는 아무렇지 않게 ‘정상적인’ 사람으로 패싱되는지 그리고 왜 보통 사회에서는 ②번이 성립하는지에 대해 답을 해버렸다. 이제 군대에서 ②번이 먹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답을 할 차례이다.

‘군대’라는 집단은 ‘단일성’을 가장 강조하는 집단이다. 다시 말해 군대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구성원은 같은 특성을 최대한 많이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성원들에게 요구되는 특성들이 ‘정상성’이 되며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 ‘정상성’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정상성’과 매우 비슷하다. 이제 이 특성들을 찾아보기 위해 ‘이상적’이라 여겨지는 가상의 병사 한 명을 머릿속에서 상상해보자.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 사람은 ‘당연히’ 남성이며,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1로 시작할 것이다. 나이는 왠지 20대 초중반일 것 같다. 몸은 그다지 불편하지 않으며 장애는 없을 것이다. 식사 시간 때마다 고기반찬이 나오기를 고대할 것이며, ‘체력 증진을 위해’ 운동을 꾸준히 할 것이다. 그리고 저녁마다 여자친구랑 통화 혹은 카톡을 하면서 힘겨운 군 생활을 견딜 것이다. 여러분들의 추측도 필자와 비슷한가? 만약 아니더라도 군인 N명을 상상한 후 그들 중 다수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추측해보면 얼추 비슷한 결과를 얻을 것이다. (물론 N은 크면 클수록 더 좋다)

그러나 이들 중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추측은 이 사람의 나이, 신체등위, 지정성별 뿐이다.5 즉, 이 3개를 제외한 나머지 특성들인 시스젠더, 비장애인, 비간성, 제드-헤테로로맨틱6, 제드-헤테로섹슈얼7, 논비건이 군대에서 요구하는 ‘정상적인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군에 입대한 사람들은 전부 이와 같은 특성을 보일 것이라 여겨지며 그렇지 않은 사람의 존재는 지워진다.

간성은 출생 후 성 지정 수술을 통해 존재가 지워진다. 트랜스젠더와 장애인은 신체검사에서 그 존재가 지워진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제드-헤테로로맨틱 제드-헤테로섹슈얼이 아닌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여겨지거나 ‘특이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또한, 비건은 애초에 존재한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러한 인식은 훈련소에 입소하면 적는 신상명세서에 ‘여자친구’의 유무를 적는 점, 훈련소에서 제공하는 식사에 매번 육류가 들어간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이 때문에 내가 군대에 입대한 시점부터 ①번이 매우 강하게 작용했고 ②번이 내게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Ⅳ. 군복(軍服) - 위장(僞裝)이 가리는 것들

군에 입대한 모든 병사는 전역할 때까지 영내에서 항상 군복을 입어야 한다. 군복을 입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제약을 받는다. 군복을 입으면 걸어가면서 음식을 먹을 수 없다(取食步行). 군복을 입으면 실외에서 모자를 벗고 걸을 수 없다(脫帽步行). 군복을 입으면 손을 주머니에 넣고 걸을 수 없다(入手步行). 군복은 반드시 단정하게 입어야 한다 등등.

생각해보니 앞에서 얘기한 ‘정상성’들도 이러한 제약의 일종이지 않을까. 군복을 입은 사람, 그중 왼쪽 가슴 주머니에 작대기 계급장이 달린 사람은 남성일 것이다. 시스젠더일 것이다. 장애가 없을 것이다. 논비건일 것이다. 비간성일 것이다. 제드-헤테로로맨틱 제드-헤테로섹슈얼일 것이다. 위 문단은 규정, 이 문단은 사실로 여겨지는 추측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두 문단은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군복은 전투상황 발생 시 본인의 몸을 풀숲으로 위장시켜주어 적에게 식별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군복의 색이 초록계열인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군복은 그 옷을 입은 사람이 ‘군인 신분’이라는 것을 드러내 주어서 앞서 설명한 제약들이 그 사람에게 가해지게 하는 역할도 한다. 그렇지만 군복이 위장시키는 것, 그리고 강제하는 것은 이것뿐만은 아닌 것 같다. 군복을 입으면 내가 가지고 있던 ‘비정상적인’ 것들은 내 의도와 상관없이 감춰지게 된다. 군복을 입으면 나는 계속 ‘정상성’을 요구받게 된다. 다시 말해 나에게 군복은 내 ‘비정상성’을 ‘정상성’으로 위장시키고 나에게 ‘정상성’의 제약을 가하게 해주는, 소름 돋을 정도로 무서운 옷이었다.

나는 ‘전역(轉役)’을 함으로써 군복을 벗었고 다시 대학에 돌아왔다. 그리고 당분간은 ‘정상성’과 ‘비정상성’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내 삶을 살아갈 생각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이런 ‘정상성’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정상성’의 압박은 나에게도 언젠간 다가올 것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할 때쯤이 될지, 사회가 흔히 말하는 ‘결혼적령기’에 내가 해당될 때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가 되면 사회는 나에게 군복과 비슷한 가상의 옷을 나에게 입힐 것이다. 나를 ‘정상적인 사람’으로 위장시킬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꾸준하게 여자친구가 있는지, 결혼은 언제쯤 할 것인지 물어볼 것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다. 그러나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내 인생이 저렇게 흘러갈 가능성이 꽤 크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가 나에게 가상의 옷을 입힐 때마다 계속해서 그 옷을 벗어줘야 한다. ‘정상성’을 나에게 요구할 때 나의 ‘비정상성’을 계속해서 드러내 줘야 한다. 여자친구, 결혼에 대한 질문이 들어오면 나는 애인 만들 생각이 없다고, 비혼이라고 계속해서 언급해 줘야 한다. 그들에 나에게 어떤 말을 하든 간에.

사실 힘든 일이다. 나의 에이로 에이스 정체성을 계속 드러낼 때 주변 사람들은 종종 혐오발언을 던진다. ‘이성’에게 관심이 없는 모습을 드러내자 ‘호르몬 이상 있냐?’고 물어보신 간부님. 결혼 생각이 없다고 할 때마다 ‘그런 애가 가장 결혼 먼저 한다’던 내 고등학교 시절 룸메이트. 연애에 관심 없다고 말할 때마다 ‘언젠가는 관심이 생길 거야’라고 말하던 동기까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주눅 들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들의 ‘정상성’을 깨주고 싶은 오기가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이 오기가 원동력이 되어 계속해서 내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커밍아웃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기에 에이로 에이스 정체성과 비연애 비혼성향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계속 언급을 해주다 보면 연애를 하지 않아도, 결혼하지 않아도, 더 나아가 ‘정상성’을 굳이 따르려고 하지 않아도 혐오발언을 던지지 않는,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 않는, 차별하지 않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그런 사회가 올 때까지 ‘정상성’의 억압으로부터 고통받는, 주변 사회가 ‘정상인’으로 위장시키는 모든 사회적 소수자에게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

첨언 : 글을 쓰다 보니 본문에서 제시한 저의 행동이 비연애주의자, 비혼주의자로 읽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에이로맨틱이면서도 비연애자이자 비혼주의자이지만, 이 세 용어가 동의어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에이로맨틱과 비연애자, 비혼주의자를 명확하게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세 특성 모두 사회의 연애정상성 등에 의해 억압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시화 운동 차원에서 이 셋을 따로 취급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제가 에이로맨틱 당사자로서 겪은 일을 적은 것이지만 비연애주의자로서 혹은 비혼주의자로서 겪은 일을 적은 것이라 읽힐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이 글을 독자들이 ‘에이로맨틱 당사자’가 쓴 글이라고 읽히도록 수정할 수도 없습니다. 세 특성으로서의 경험이 얽혀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저는 본문을 수정하는 대신 첨언을 추가함으로써 이를 밝힙니다. 연애정상성 등에 의해 억압받는 비연애주의자분들과 비혼주의자분들에게도 다시 한번 지지와 연대를 보냅니다.


  1. ‘성적인 끌림을 느끼지 않음’과 ‘성적인 관계를 원하지 않음’을 분리해서 쓴 이유는 둘이 다른 개념이어서 그렇다. 실제로 성적인 끌림을 느끼지 않지만, 성적인 관계를 원하는 사람들을 표현하는 단어(큐피오섹슈얼)도 존재한다. 그 외의 다양한 무성애 정체성 용어들을 알아보고 싶으면 무성애 가시화 행동 무:대 블로그를 참고할 것 (https://www.acetage.com) ↩︎

  2. 그렇다고 게이를 언급한 부분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게이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정체성이 아닌 ‘그저 존재하는’ 정체성일 뿐이다. 그리고 굳이 게이가 아니어도 우리는 타인의 모든 면을 이해할 수 있을까? ↩︎

  3. 실제로는 이 말 뒤에 성적인 말이 더 들어갔지만, 이 글에서 굳이 밝혀야 할까 싶다. ↩︎

  4. 참고로 이 친구에게는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커밍아웃하지 않았답니다. ↩︎

  5. 병역법에 그 근거가 나와 있다. ↩︎

  6. 제드-헤테로로맨틱(Zed-Hetero Romantic) : 이성로맨틱 (이성에게 로맨틱 끌림을 느끼는 사람) ↩︎

  7. 제드-헤테로섹슈얼(Zed-Hetero Sexual) : 이성애자 (이성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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