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로부터의 공포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인간의 감정은 공포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것이 바로 미지에 대한 공포이다.
얼마 전 나는 정신과에서 추가적인 약 처방은 더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홀가분한 기분이 되어 진료비만 계산하고 보건진료소를 나왔다. 처방전 없이 나서는 발걸음이 조금은 낯설기도 했다. 자그마치 2년이나 걸렸던 길고 긴 치료도 이제 끝이 보였다.
새삼 끝을 보려니까 내가 왜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망가졌던 원인은 명백했다. 나는 중고등학교의 집단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계속 왕따를 당했었다. 반수 끝에 대학에 와서야 처음부터 인간관계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고, 상담과 치료를 반복한 끝에 지금은 무척 잘 지내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내가 정신과로 달려갈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결정적인 사건은 대학에 들어와서 일어났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자연스럽게 그 불쾌한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어느 날 큐이즈에서 만난 친구가 운동부 동아리에 들어올 것을 권유하였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운동과는 영 거리가 먼 나였지만,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그 영업에 홀랑 넘어갔다. 나는 큐이즈 친구들과는 다른 새로운 사람들에게 금방 매료되었다. 난생 처음 해 보는 운동부활동이었지만 생각보다 재밌었고, 열심히 한 만큼 실력도 쑥쑥 늘어서 나는 신입회원 훈련에 성실하게 나갔다.
내가 한창 훈련에 열중하고 있을 때, 훈련 시간에 자주 얼굴을 보이던 한 선배가 있었다. 편의상 그를 K라고 하자. 어떤 동아리든 동아리방에 상주하면서 길 잃은 신입회원을 돌보는 고인물들이 있기 마련이다. K도 비슷한 사람이었다. 이번 달도 적자라고 불평하면서도 기꺼이 대여섯 명이나 되는 신입들을 위해 저녁을 사주고, 베테랑 회원답게 자세도 꼼꼼하게 교정해주었다.
저녁 시간에 있는 훈련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이 겹치는 K는 종종 나와 동행했다. 우리는 예술대와 자하연을 잇는 일명 ‘걷고 싶은 길’을 함께 걸었다. 가을 저녁의 걷고 싶은 길은 어둡고 호젓했다. K는 훈련 때 보이던 깐깐한 모습과는 달리 유독 나에게는 친절했다. 그는 천천히 길을 걸으며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 오랜 꿈과 전공 수업에 관해 이야기해주었다. 당시 새내기였던 나에게 K는 신비롭고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나도 내 속마음과 고민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 후로 언젠가부터 K로부터 카톡이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번주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도의 멘트였다. 나는 가장 친한 친구하고도 카톡을 잘 하지 않지만, 그래도 예의를 차려 답장을 보냈다. 나에게 K는 그냥 적당히 이야기하기 편한 상대였다. 사실 그에 대해서 그냥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내가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난 뒤에도 종종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음 해로 넘어가서 1월 15일에 뜬금없이 K로부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가 날아왔다. 나는 친구들과 “뭐지? 날짜 감각이 특이한 사람이네.”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생각해보면 1월 15일도 아니고, 구정 부근인 2월도 아니고 새해 인사를 보내는 타이밍으로 1월 15일은 확실히 이상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자 몇몇은 “그 사람, 그 인사 보낸다고 얼마나 고민했을까!”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봄 학기가 돌아오자 운동부 동아리에 완벽히 적응한 나는 동아리를 과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내 영업에 넘어간 동기 한 명과 후배 두 명이 동아리에 들어왔다. 나는 K가 후배들의 훈련을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에게 성심성의껏 잘해준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가 나에게도 해준 것처럼 내 소중한 후배들에게도 잘해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마침 첫 대생원 상담도 무사히 끝나서, 이번 해는 모처럼 동아리에서 과 친구들과 함께 좀 더 재밌고 활기차게 보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던 차였다.
그런데 첫 훈련이 끝난 날, 동기와 후배들이 나에게 와서 K에 대한 불만을 앞 다투어 쏟아냈다. 그가 자세 교정을 한답시고 다리를 기분 나쁘게 툭툭 발로 찼고, 훈련 내내 예의를 밥 말아먹은 것처럼 짜증스럽고 성의 없는 말투로 일관했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나에게 보여줬던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일단 간신히 정신을 추스르고, 임원진 쪽에 잘 이야기해보겠다고 하고 돌려보냈다. 한동안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뭐지? 편애인가? 대체 왜?
갑자기, 한 가지 사실이 머리를 스쳤다. 공교롭게도 나는 여성으로 패싱되었고, K와 과 동기, 후배들 모두 (지금까지 내가 알기로는) 시스젠더 헤테로남성(이하 ‘헤남’이라고 한다)이었다. 설마, 그럴 리가.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가정이 뱃속 깊은 곳에서 꿀렁거리며 올라왔다. 나를 연애 대상으로 삼아보고자 하는 수작이었던 거야? 생각할수록, 모든 정황이 아주 알맞게 꼭 들어맞았다.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반쯤 제정신이 아닌 채로 허겁지겁 집에 돌아온 것 같다. 익숙한 자취방 풍경이 일그러져 보였다. 나는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져 방안을 정신없이 서성였다.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급기야 과호흡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마구 뛰었다. 자꾸만 눈앞에 식칼이 어른거렸다. 그동안 자살 충동은 수도 없이 느껴봤지만, 자해 충동은 그때가 살면서 처음이었다.
그날 내가 나를 어떻게 진정시키고 잠자리에 들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아서 다음날 무작정 정신과를 찾아갔다. 다행히 마침 환자가 아무도 없어서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항불안제와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았다. 효과는 아주 좋았다. 진작 약물치료를 받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정신과 치료였다.
그 끔찍한 밤을 겪은 뒤에는 이대로 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걷고 싶은 길을 걸으며, 나는 K에게 일부러 정신과 약을 처방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나는 정신병자니까, 제발 떨어져달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K가 도리어 내가 중대한 비밀을 자기와 나누었다고 착각하는 바람에 난처해지기도 했다.
나는 K를 떼놓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썼다. 여전히 날아오는 메시지는 일부러 하루 늦게 대충 답장을 보냈고,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나가려는 낌새가 있거든 칼같이 잘라버렸다. 개강 파티에서 나는 K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고, 초조해진 그가 아무 말이나 던지자 바로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면박을 주었다.
찝쩍거림의 끝은 내 생일날 날아온 기프티콘이었다. 작지만 절대 싸지 않은 케이크였다. 아직 K의 정체를 알아차리기 전 내 생일 날짜를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잊지 않고 딱 12시 정각에 보낸 것이었다. 문득 카카오톡에는 예약 메시지 전송 기능 같은 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기프티콘 전송 버튼에 손가락을 올리고 12시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K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짜증과 역겨움, 공포가 동시에 밀려왔다. 나지막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나는 드디어 원하지 않으니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의외로 K는 순순히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게 K와의 마지막 접촉이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원하지 않는 플러팅에 시달렸던 적은 몇 번 있다. 반수를 할 때 예전 학교에서 학식을 먹던 나를 지켜보다가 식당 밖으로 나를 쫓아왔던 사람이 있었다. 그때도 나는 겁에 질렸었지만, “우리… 친해져 볼래요?”라는 멘트가 왜 그렇게 웃겼는지. “저 이상한 사람 아닌데요!”라고 하면서 어두운 낙성대 골목길에서 나를 집까지 집요하게 따라오던 매우 이상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건 차원이 다른 공포이기 때문에 일단 넘어가도록 하자. 여하튼 내가 그중에서도 K과의 일을 강렬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소름 끼치는 경험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이는 벌써 2년 전의 일이고, 나는 운동부 동아리에서 훌륭한 고인물이 되어 여전히 행복하게 잘 나가고 있다. K는 기어코 다른 동아리 후배를 꼬시는 데 성공했고,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회비만 꼬박꼬박 내며 동아리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가능성은 적지만, 언젠가 그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면, 그 하고많은 세상의 여자 중에서 왜 하필이면 별로 여자이고 싶지도 않은 에이로맨틱 에이섹슈얼을 골랐는지, 운도 더럽게 없다며 비웃어주고 싶기도 하다. 아니면 덕분에 정신과 치료를 시작해서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고 평온하게 살고 있어 정말 고맙다고 말하며 실컷 약 올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서, 나는 몇 달 전에야 간신히 용기를 내서 K와 주고받았던 카톡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내가 생일 선물로 보낸 기프티콘이 부담스럽다고 솔직히 이야기하자, ‘아네죄송요’라고 보냈던 K의 마지막 대답을 보니 실소가 터져 나왔다. 듣자 하니 나뿐만 아니라 나보다 먼저 들어온 운동부 여학우에게 다 한 번씩 찝쩍거렸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지금은 아직 졸업도 안 하고 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는데, K의 여자친구인 그분은 잘 지내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물론 K가 나에게 이런 식으로 말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때 너를 챙겨준 것은 단지 오랜만에 보는 인문계열 후배가 정말 반가웠기 때문이야. 그런데 그런 식으로 오해했다니 정말 곤란한걸. 나는 전혀 너와 연애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었어.” 뭐, 이 모든 일이 사실 순전히 나의 비대한 자의식과 지나친 망상 때문에 일어났다고 해도 나는 더 할 말이 없다. 단지 내가 궁금한 것은 ‘왜 나는 그때 그 정도로까지 두려워했는가’이다.
원하지 않는 찝쩍거림은 언제 당해도 불쾌하지만, 사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가 “번호를 따이는” 매력적인 상대로 보인다는 것을 은근슬쩍 자랑하고는 한다. 나도 내가 그런 일을 겪으면 그렇게 반응할 거라고 상상하고는 했다. 하지만 몇 번 실제로 당해보니,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너무 무섭고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불행히도(?) 나는 나와 친했던 헤남들이 나에게 호감이 있다는 사실을 기가 막히게 빨리 눈치 채는 편이다. 일부러 허튼짓 못하게 하려고 아예 커밍아웃하고 쭉 친구로 지낸 적도 있었다. 위에서 말한 동아리 선배는 커밍아웃을 할 정도까지는 친하지 않았기에 아마 저러한 참사를 겪은 것이리라.
어떤 식으로든 내가 성적 대상화 혹은 연애적 대상화를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버린다. 나에게는 성적 끌림과 로맨틱 끌림이 없기에 그것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내가 그 끌림의 대상으로 비친다는 게 너무나도 낯설고 견딜 수가 없어지는 것이다.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찝찝하고 느글거리는 기분. 그나마 무섭고 두렵다는 말이 가장 가까울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무서워하는 걸까? 일단,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로맨틱 끌림과 성적 끌림, 그리고 거기에 수반되는 특별함과 소유욕, 질투 등등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원래 없는 것을 억지로 이해해보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당최 설명할 길이 없다. 내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나의 이해력 너머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체도 실체도 모르고, 그렇기에 내가 감히 가늠할 수도 없고 대비할 수도 없는 것이, 마치 나를 집어삼킬 듯 다가오는 것 같다.
친한 사람이 나에게 그러한 끌림을 느낀다는 것은 이전과는 다른 관계의 변화를 뜻한다. 한편으로는 사실 그다지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 감정을 돌려줄 수 없다. 도저히 이해할 수도 느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불일치가 일어난다고 해서 내가 지금까지 친하게 잘 지내던 사람과 갑자기 관계를 확 끊어버리지는 않는다. 관계에서의 균형이 반드시 동등한 감정의 동등한 크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받는 것이 있다면 병아리 눈물만큼이라도 주는 것도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아무리 일방적이고 헌신적인 감정일지라도 그가 무의식적으로 나에게 기대하는 것을 나는 돌려줄 수 없다.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끌림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내 친구를 사랑하기에, 누구의 잘못도 없이 서로의 감정과 바람이 어긋난다는 게 무서웠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이제 나에 대한 감정을 눈치 챘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정말 막막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무대응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던 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별로 친하지 않고 잘 모르는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 쉽게 답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친한 사람의 경우와 비슷하면서도 무언가 달랐다. 우선 상대는 나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네까짓 것이 대체 나에 대해 뭘 안다고?’하는 생각이 먼저 들기 마련이다. 별로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한편 나 또한 상대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면 친한 사람과는 달리, 나에 대한 감정을 알아차리고 적절한 대응을 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훅 들어오는 고백은 몇 배로 당황스럽다. 그러면 마치 낯선 사람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상황처럼,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이었다. 힘들게 내린 결론은,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큐이즈에 들어와 많은 퀴어 친구들을 만난 것이 꼭 나에게 반드시 행복과 즐거움만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큐이즈에는 참으로 다양한 유형의 퀴어들이 있고, 나는 가입 후에 이런저런 일로 많은 여성애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어쨌든 지금 나는 여성으로 패싱되기에, 큐이즈에 가입한 것은 나의 세계관이 넓어짐과 동시에, 어쩌면 나에게 끌림을 느낄 수 있는 잠재적인 범위가 늘어났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전에는 거의 헤남들만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에게 두려움을 안겨줄 수도 있는 사람이 늘어나 버린 것이다. 평소에는 동아리에서 즐겁게 지내면서도, 이 점이 늘 나를 미묘하게 불편하게 했다.
이렇게만 보면 세상이 마치 온통 무서운 사람으로만 바글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나에게 끌림을 느끼는 지와는 상관없이, 단지 가능성만 있어도 나에게는 충분히 공포를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당연하게도 나 또한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 좋다. 하도 사람에게서 상처를 많이 받는 바람에, 관계에서의 ‘안전’은 내가 인간관계를 맺을 때 굉장히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내가 두려움 없이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들은 결국 나를 대상화하지 않을 사람들, 예컨대 게이 혹은 헤녀밖에 없는 것인가? 지금 이 글을 쓰는 내가 봐도 이게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인가 싶다. 단지 그들이 나에게 끌리지 않아 내게 두려움을 안겨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 점이 반드시 좋은 관계를 보장해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관계에서 안전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공통 관심사’와 ‘공감’이다. 다시 말해서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좋다는 것이다. 내가 헤녀들과는 지독히도 안 맞는다는 사실은 이미 학창시절 때 징그럽도록 자주 실감했다.
한편 게이들은 그나마 가장 이야기하기 편한 상대면서도, 여러모로 섣불리 편하다고 말하기가 참 어렵다. 내 성욕은 정말 자그마하기 때문에, 성적인 대화가 오갈 때면 나는 공감을 못 할 때가 잦다. 대화가 무르익을수록 어느 농담에서 웃어야 하고 어디에서는 나대지 말아야 하는지 점점 눈치를 보게 된다. 가끔은 그들이 나와는 2억 광년 정도 떨어진 피와 살덩어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면 동아리 바깥에서와 다를 바 없이 진한 소외감이 밀려오는 것이다. 다른 걸 다 떠나서 그냥 애초에 성격적으로 안 맞는 사람도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도록 내 이미지를 철저히 망가뜨리는 건 어떨까. 가능성이 희박한 이야기이다. 나 또한 멋지고 잘난 내 모습을 아주 좋아하고, 거기에서 자존감을 찾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나도 그런 인정을 바라는 욕망에 중독되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매혹적으로 보이고 싶으면서도, 누군가가 나에게 끌림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도 두렵다.
결국 이렇게 되면 대상화에 대한 두려움은 피할 수 없는 셈이다. 살면서 인간관계를 맺고자 한다면 언젠가는 부딪쳐 마치 숙명처럼 안고 가야 한다. 하지만 원초적인 두려움은 정말 어찌할 수가 없다. 이 두려움과 나는 끊임없이 맞서 싸우기도 하고, 굴복하기도 하고, 때로는 뛰어넘기도 하면서 최후까지 함께 해야 할 것이다.
두려움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 때문에 포기하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인간관계가 아주 많다. 나는 아무 잘못도 안 했고, 모르는 걸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건데, 왜 내가 슬퍼하고 포기해야 하는 거지? 하지만,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조금이라도 더 현명하게 관계를 지어 나가려면 무언가 대책이 필요하다. 멀티 엔딩 게임의 배드 엔딩 멘트처럼 이 글을 끝내는 것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부글부글 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