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사: 편집장의 말

퀴어, 비릿한 날언어로 귀환하다

살다보면 답답함에 체하는 날이 생긴다. 답답함과 억울함이 질긴 고기마냥 식도와 위장에 꽉꽉 들어차 차라리 내장을 뽑아 물에 헹구고 싶어진다. 그런 날이면 성대도 숨을 쉬지 못하는지 말조차 할 수 없고 (아니 말을 할 수 없어서 체하는건가) 왜 아픈지도 명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치병도 할 수 없지만 쿡쿡 쑤시는 팔다리와 무기력한 전신만이 나의 징후인 날이 있다.

우선은 말해야겠다.

QueerFly는 내 아픈 성대를 울려 내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말해내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내 속에 이야기되지 않은 덩어리들을 가지고 있지도, 울분을 술에 타 토해내지도 않으려면 말이다. 솔직히 내가 먼저 매체를 만들자고 한 건 내 치병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병에 걸린 작자가 한 둘이 아니다. 이 이야기를 같이 만들어낸 QueerFly 편집팀 식구들도 이 병에 걸려있겠지. 당연히. 하지만 이 알 수 없는 체기는 Queer의 이야기를 추방한 우리 모두가 이 병에 걸려있다. 이미 Queer는 우리 사회 안에 있고, 당신들 안에 있는 것이다. 이야기의 추방에 식도가 틀어막힌 건 답답한 이성애중심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이다. 솔직히 난 이 이성애 중심사회가 너무 재미없고 답답해서 돌아버릴 지경이다. 당신들은 안 그런가?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들을 추방해리고 바보같이 재미없게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안쓰럽다.

이 이야기들을 생각해내고 글로 써내고 읽고 다시 생각하고 반응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우리 모두를 위한 치병의 과정일 것이다. 바늘 같은 글을 쓰고 싶었다. 우리 사회의 막힌 혈들을 뚫어주는, 그 허술함을 그럴듯하지만 이미 낡아버린 천막으로 감춘 이성애중심의 사회에 균열을 내는 그런 글들을 쓰고 싶었다. 엄지 손가락 한번 따고 나면 체증을 몰라보게 나아지게 만드는 바늘처럼 나와 당신의 답답함을 뚫어줄 이야기들이 이제 우리 앞에 놓여져 있다.

요즈음에 추방당한 Queer 이야기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귀환하고 있다. 이 이야기들은 대부분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낭만적이고 영원한 사랑의 가면을 쓰고 있다. 〈퀴어 애즈 포크〉와 〈L 워드〉는 미국적인 영상과 자극적인 스토리를 담고 왔다. 〈퀴어 아이〉는 어쩌면 가장 솔직하게도, 자본주의의 환상과 함께 수많은 광고를 들고 돌아왔다. 아이돌 팬픽과 야오이들은 아름다운 미소년들과 함께 이젠 믿지 않는 순정만화의 공식들을 타고 돌아왔다.

이 이야기들은 향긋하고 친숙하다. 영원한 사랑, 자극적 스토리, 자본주의의 나르시시즘, 아름다운 미소년 그 얼마나 향긋하고 친숙한 것들인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들은 Queer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 향기와 친숙함이다. 아니 저 친숙해서 이젠 진부한 것들이 Queer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게 맞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이것들에 비하면 우리가 전할 이야기들은 너무 비릿하다. 페브리즈는 커녕 나프탈렌 냄새도 더하지 않고 전할 것이다.

퀴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Queer‘의’ 이야기가 필요한 때이다. 퀴어를 가지고 지지고 볶고 갖은 양념으로 덮어버린-그래서 원래의 맛은 알 수 없는-이야기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비릿한 생 퀴어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2006년, 오늘을 살고 있는 대학 퀴어인, 그들이 생생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 당신은 때로 동감하고, 울고, 웃고, 짜증이 나고, 무서울 것이다. 그리고 숨겨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QIS의 지난 11년의 역사는 Queer가 존재함을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우리에게 동아리방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것, 세상에서 우리의 그 공간을 지키고 있는 것, 즉 ‘존재’ 자체가 존재의 방식이었고 운동방식이었다. 이번 QueerFly의 발간은 우리에게도 새로운 도전이다. 더 이상 대학사회와는 분리되어 있는, ‘그 방’에 숨어 있는 변태들이기를 거부하는 움직임이다. 새로운 소통의 통로를 만들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이다.

우리의 이야기들이 LGBT의 모든 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읽혀지는 것은 우려스럽다. 우리는 Queer인 동시에 서울대생이고, 인종, 계급, 성별, 장애 등으로 위치지어진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들 사이에서도 우리는 너무나 다르다. 함께 글을 쓰면서도 사실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은 있었다. 특히 동아리내의 gay 중심의 문화는 QIS내에서도 더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글을 쓰고 있는 누구도, 자신의 위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당신의 위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열심히 준비한만큼 열심히 읽어줬으면 하는 건 편집장의 욕심이겠지만, 쉽지 않았던 우리의 입맞춤이, 당신에게도 쾌락이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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