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7 - 게이를 바라보는 시선, 레즈비언을 바라보는 시선
1. 게이를 바라보는 시선 by 民
1-1. 뉴요커 게이라는 시선에 대하여…
그리 널리 알려진 말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뉴요커 게이”라는 표현이 있다. 즉 주위에 커밍아웃한 동성애자가 없는 이성애자들은 게이의 전형적인 모습으로서 “대도시에서 거주하면서 나름대로 좋은 전문직에 종사하고 명품을 좋아하고 패션에 민감한 2,30대”의 모습을 떠올린다.
아마 “Queer as folk”등과 같은 방송의 영향이겠지만 사실 이는 나같이 패션에 둔감한 게이에게는 다소 억울한(?) 이미지이다. 그리고 소도시나 농촌에 거주하는 게이 그리고 블루칼라 게이에게는 더욱더 억울한(?) 이미지이다. 청소년이거나 할아버지 게이에게도 또한 그러하다.
물론 게이가 일반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여성성에 대한 편견이 적으므로 옷을 더욱 과감하게 입을 수 있고, 또한 사회에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많이 존재하므로 그러한 편견에서 좀더 자유로울 수 있는 전문직을 상대적으로 선호한다고 볼 여지는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거주지가 대도시이건 시골이건 직업이 화이트칼라 전문직이건 블루칼라 노동자이건 패션에 민감하건 둔감하건 청년이건 청소년이건 게이는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1-2. 게이들은 “여성스러울” 것이라는 시선에 대하여…
이글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의 원인과 그 부당성 혹은 타당성 등에 대해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므로 그런 논의는 일단 생략하기로 하겠다. 흔히 통용되는 의미로서 남자가 “여성스럽다.”라고 하는 것은 아마 (보통(?)의 남자와 달리) 축구, 농구 등의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말투, 행동이 여자들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흔히 게이는 여성스러울 것이다 라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저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게이들은 일반 남성들보다 여성스러움에 대한 편견이 적기 때문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여성스러운 행동들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특히 자신의 성정체성을 아직 인정하지 않은 게이들 중에는 “자신은 게이가 아니다.”라는 강박관념이 있는 경우가 있고 그러한 경우 자기안의 여성스러운 측면을 부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한 게이들은 오히려 전혀 여성스러워 보이지 않기도 하다. 또한 자신의 성정체성을 완전히 받아들인 게이의 경우라도 여성스럽지 않은 게이가 더 많이 있다.
“게이”라는 것은 동성인 남성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는 남성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그 사람의 행동스타일이 남성적이다 혹은 여성적이다라는 것과는 무관한 것이다.
아마 게이는 여성스러울 것이다 라는 시선은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홍석천씨의 영향이 일정정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또한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여자=여성스럽다.”라는 이성애 중심적 편견이 “(남자를 좋아하는 게이)=여성스럽다.”라는 식으로 전이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게이가 여성스러울 것이다 라는 편견 자체가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해 우리 사회 가진 편견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2. 레즈비언을 바라보는 시선 by 세요
존재하지 않는 시선에 대하여…
게이다. 게이다. 게이들이 보인다. tv에서 소설에서 영화에서, 여기저기에 그들이 등장한다. 더러운 호모새끼라고 아무리 욕을 퍼부어도 그들은 잡초마냥 꼿꼿하게 일어서서 우아한 자태로 포비아들을 째려본다. 마침내 세상도 그 시선에 움찔한 걸까. 게이에 우호적인 사람들이 늘고 있다. 게이들의 세계를 그린 드라마 〈퀴어애즈포크〉, ‘감각 없는’ 이성애자 남자들을 게이들이 ‘재탄생’ 시키는 〈퀴어아이〉,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 〈브로크백마운틴〉과 〈왕의 남자〉, ‘게이 친구’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과 〈섹스앤더시티〉 등등. 이들이 단순히 대중문화의 수용자들이 자극적인 소재를 찾기 때문에 등장한 컨텐츠들은 아닐 것이다. 물론 여전히 게이들은 이성애 중심의 사회에서 멸시받는 존재이지만 또 한편으로 긍정적인 ‘계급’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외모를 잘 가꾸고, 선망 받는 직업을 갖고 있고, 예술적인 재능이 뛰어난 상류층의 이미지를 갖추어 간다.
같은 동성애자로서, 그러나 여자로서, 때론 상대적 박탈감이 들기도 한다. 동성애에 대한 인식은 느리게나마 긍정적이 되어가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반쪽, 남자들의 동성애에 국한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퀴어운동, 퀴어예술 과 같은 카테고리에서 레즈비언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미미하고, 미소년들의 사랑에는 열광하면서 레즈비언에는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여자들이나 ‘요즘 게이친구는 자랑이에요’ 같은 기사가 잡지에 실리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씁쓸하게 웃을 수 밖에 없다.
물론 게이에 대한 저런 시선은 커뮤니티의 어두운 면을 거세한 판타지에 가깝고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이 글에서 뒷 배경에 꽃이 만발한 듯한 저 밝은 시선에 불만을 털어놓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말하려는 것은 시선, 그 자체이다.
일반인들은 게이를 여성스러운 남자나 메트로섹슈얼과 같이 정형화된 어떤 상으로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레즈비언은 어떠한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물어보고 싶다. 어떤 여자를 보고 “쟤 혹시 레즈비언 아닐까?” 라는 의심을 품어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한국 사회에서 레즈비언은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라는 개념으로만 존재할 뿐 이미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레즈비언들이 가지고 있는 외적, 내적 특성들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남성 중심적이고 이성애 중심적인 사회에서 그들의 존재는 게이들보다 더 무시되었다. 레즈비언은 누구에게도 보여 지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동성애자 커뮤니티 안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레즈비언에 대해 나름대로 구축한 이미지가 있지만(물론 그것들을 여기서 광고할 생각은 없다) 정체성을 깨닫기 전, 즉 이성애 중심 사회의 시선을 내면화 하고 있을 때에는 ‘여자’ 라는 특성 외에는 레즈비언의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를 보고 “저 사람 레즈비언 아닐까?” 라는 의심이 불가능했음은 물론이다.
나는 몇몇 커밍아웃한 이성애자 친구들에게 ‘레즈비언을 보는 시선’을 물어보았다. 어떤 친구들은 ‘특별히 없다’는 대답을 했고 다른 친구들에게서는 숙고 끝에 포르노 배우, 짧은 머리의 남자 같은 여자, 연예인을 흉내 낸 여중고생, 예술가 적인 타입, 피어싱과 짙은 화장을 한 여자 등등의 대답이 나왔다. 포르노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타입의 레즈비언들을 찾아 볼 수 있긴 하지만 일반인들이 레즈비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게이들 보다 훨씬 산만하고 옅었다. 여성스러운 남자를 보고 ‘쟤 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은 해 보았지만 특정 타입의 여자를 보고 ‘쟤 레즈 아닐까?’ 라는 생각은 거의 해본 적 이 없다는 것이다.
게이들은 자신들을 향한 정형화된 시선에 대항하지만 레즈비언들은 대항할 시선조차 갖고 있지 않다. 여자 둘이 아무리 팔짱을 끼고 어깨동무를 하고 왼손 약지에 같은 반지를 다녀도 그들을 연인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짧은 머리에 스포티한 옷차림을 하고 있어도 ‘보이시하군’ 정도의 반응으로 그만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레즈비언에 대한 시선이 존재 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편으로 굉장한 편리성을 가져다준다. 이성애자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시선의 사각지대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어디를 가도 투명인간이 되어 버리는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싶다는 욕망이 인다.
내겐 외국생활을 오래 한 고모가 계신데 레즈비언에 대한 시선이 상대적으로 가시화 된 나라에서 살다 오신 그 분은 다른 가족들은 생각도 못하는 내 성정체성을 의심하신다. 대한민국 사회가 이성애자들의 시선으로부터 숨을 곳이 많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들을 누리지 못하기도 한다. 편견을 언급하기 전에, 이 사회에서 레즈비언 또한 살아 있음을, 여기서 생생하게 숨쉬고 상처 받고 사랑하고 있음을 알리고 싶다.
3. 당신 옆의 동성애자를 보는 시선…
이성애자들에게 게이는 어떻게 보여지고, 레즈비언은 어떻게 보여지고 혹은 보여지지 않고. 사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당신들 머릿속의 시선- 당신들의 머릿속에서 구축된 동성애자들의 모습이다. 그 모습은 책에서 조금, 신문에서 조금, 영화에서 조금씩 따와서 당신 나름대로 조물조물 반죽해 만들어놓은 형상일 것이다. 혹시 한번도 동성애자를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나는 당신들의 시선에 하나 더 딴지를 걸려 한다. “실생활”에서 이성애자들은 동성애자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이 답은 당신 자신보다 우리들이 더 잘 알고 있다. 당신들은 바로 옆의 우리를 보지 못한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연애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는 안주거리다. 거짓말을 하기도 커밍아웃을 하기도 싫은 동성애자들은 대부분 입을 다물고 있거나 자기의 연애 이야기를 性만 바꿔 대강 언급하다 말기 마련이다. 그런 우리들은 ‘이성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 즉 ‘연애에 관심이 없는 사람’ 이 되어버린다. 멍석만 깔아주면 밤을 새서 同性 이야기를 침 튀기며 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연애에 무심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어쩌다 동성애 이야기가 토론 거리로 나올 때도 마찬가지다. 자기 옆에 앉아 있는 사람 혹은 자기의 친구가 동성애자일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이성애자들은 늘 그런 가능성을 배제한 채 이야기를 한다. 대화 속 에서 우리들은 항상 타자화 된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당신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거나 왜 우리를 몰라주냐며 땡깡(?)을 부리려는 것이 아니다. 미안하다. 이 글에서나마 당신들을 잠깐 비웃어주려 한다. 실생활에서 당신들의 시선은 우리를 보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들, 동성애자들은 어디나 존재한다. 나 또한 내가 동성애자임을 모르는 수많은 지인들을 알고 있고 그들과 온갖 이야기들을 나눈다. 나의 성정체성을 모르는 친구들과 연애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결혼이니 장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이건 조금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당신처럼 이성애자 부모님과 동생이 내게도 있다. 나의 정체성을 모르는 식구들과 여름밤 마루에 누워 동성애를 다룬‘그것이 알고 싶다’ 와 같은 TV프로를 함께 보며 포비아적인 발언들을 듣고 있기도 한다.
그러니 이성애자인 당신이여, 당신이 동성애자를 멸시하든 이상화하든 그에 대해 판타지를 갖든 이것만은 잊지 말아주길 바란다. 우리는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 지금도 당신 옆에서 함께 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당신의 핸드폰에 내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당신의 베스트 프렌드 일수도, 어쩌면 당신의 형제자매 일수도 있다. 경제적인 충고를 해주겠다.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당신의 편견 가득 찬 상상력이 만든 두루 뭉실한 존재들에 향할 것 없다. 고개를 돌리면, 그 옆에 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