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2 - 우리는 어디에서나 본다

시렌
September 22, 2007

1. 목욕탕에서

어렸을 적부터 일주일에 한번 하는 목욕은 나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어느 순간 아버지의 손을 잡고 목욕을 가는 대신에 혼자 때를 밀 수 있게 된 때부터 보통사람은 피하는 일요일의 사람 많은 시간을 일부러 노리고 가기도 했다. 대개는 나이 든 아저씨들 뿐이었지만 가끔씩 상당히 몸이 좋은 형이 있어 넋을 놓고 쳐다본다든지 괜히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앉기도 한다. 대학에 들어온 지금까지도 나는 목욕이 즐겁다. 땀을 흘리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때를 미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목욕탕에서 가끔 보는 잘 다듬어진 몸도 내가 목욕을 기꺼이 하러 가도록 하는 큰 이유이다. 그러고 보면 몇몇 게이들은 공중목욕탕을 꺼린다던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이리도 눈이 즐거운 것을.

2. 티비나 잡지

요새는 티비를 보는 것도 잡지를 보는 것도 예전보다 훨씬 즐거워졌다. 이유가 어찌 되었 간에 “남자를 벗기는” 광고가 나오는 것은 나의 눈에는 즐거운 일이다. 여자들만 벗던 시절에는 그들의 몸에 관심도 없거니와 “왜 남자연예인들은, 남자 모델들은 도대체 안벗고 나오는거야”라는 푸념을 하기도 했는데, 요새는 남자 연예인들도 누드를 찍고, 콘서트를 하면서 훌러덩 벗어버리고, 드라마에서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서 샤워를 한다. 눈이 즐겁다. 남성잡지를 자주 보는데 벗은 모델들이 자주 나온다. 이 잡지가 게이 잡지인지, 남성 잡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쩐지 주 소비층은 게이일 것 같다. 이성애자 남성들도 자신보다 멋진 남성을 동경하기도 하지만 우리만큼 눈이 즐겁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3. 고등학교 체육시간

공놀이는 싫은데 오늘도 체육선생님은 공을 종류별로 던져주고 애들에게 놀라고 한다. 제일 인기가 없는 배구공을 갖고 있는 그룹에 끼어들어서 던지는 시늉을 하다가 더운 여름의 햇볕을 피해 나무그늘로 들어간다. 농구공을 드리블하는 아이와 그를 막아서는 아이를 본다. 언제나처럼 웃통은 벗고 있다. 남자고등학교에 거리낄 것은 없으니까. 그야말로 “싱싱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축구공을 향해 달려드는 여러 명의 아이들을 본다. 역시나 눈이 즐겁다. 팍팍한 고등학교 시절에 체육시간은 이렇게 나에게 조그만 즐거움이다.

체육시간이 끝나고 나면 우르르 수돗가로 달려간다. 나 역시 걸음을 수돗가로 옮긴다. 한바탕 달리고 난 아이들이 고무호스로 몸에 물을 뿌려댄다. 가끔은 다 젖은 나머지 팬티만 입고 교실로 뛰어들어 가기도 한다. 가끔은 나에게 자신의 몸에 물을 뿌려 줄 것을 부탁하기도 한다.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러나 속으로는 기뻐하면서 물을 뿌려댄다. 찬물이 닿을때마다 움찔움찔하는 갈색의 근육을 보면서 남자고등학교에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하며 속으로 즐거워한다.

4. 헬스장에서

‘앗 오늘도 또 왔다. 저 사람..’ 물론 그 사람과 마주치고 싶어서 그 사람이 오는 시간에 맞춰서 운동하러 왔다는게 사실이겠지만, 그래도 저렇게 몸이 예쁜 사람이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즐겁다. 예쁘게 다듬어진 모습은 주변의 풍경과 주변의 수많은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확 들어온다. 앗, 그사람이 운동을 마쳤나보다. 난 아직까지 마치지 않은 나의 운동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티가 나지 않도록 천천히 쫓아 내려간다. 요새 눈이 안좋아진 점은 상당히 나를 슬프게 한다. 예전과 같이 깨끗한 영상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 흐릿하나마 그의 몸을 보는 것은 즐겁다.

5. 나는 본다. 우리는 본다. 어디서든지 본다.

과거 남자셋 여자셋이라는 시트콤에서 홍석천씨가 쁘아종 역할을 맡았을때, 그는 송승헌을 끈적한 눈으로 쳐다보는 역할을 했었고, 그러한 끈적한 시선은 보통 사람들에게 웃음의 한 요소가 되었다. “게이의 일반 남성을 보는 시선”이라면 이런 식으로 시선의 주체로서가 아닌 일반적인 상황에서 벗어남을 이용한 희화화이거나, 혹은 일반 남성들의 공포의 대상으로서 “지하의 어느 클럽에 들어갔는데 남자만 가득하더라”는 식의 괴담, 혹은 음란하고 퇴폐적인 시선이라고 인식되어온 것이 보통이다.

세상의 시선은 두가지로 이루어져있다고 일반들은 생각한다. 남성의 여성을 보는 시선과 여성이 남성을 보는 시선. 그리고 서로간의 은밀한 시선으로 인한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해 세상을 남탕과 여탕으로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로 남고와 여고로 나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에 동성애자의 시선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사람들은 남자가 남자를 욕망의 대상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의 시선에 비정상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기 위해 노력한다. 웃기게 보이거나, 공포의 대상이 되거나. 동성애자들의 시선이 남성과 여성으로 이분되어진 안정된 사회에 내는 균열을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게이들은 남성을 본다. 우리의 시선은 언제나 희화화되거나, 공포와 함께 무시 당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은 존재한다.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당신이 당신 주변에는 게이가 없을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그 순간에도, 그리하여 “동성애자라는 사람들은 다 어디 있는거야? 어디에도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왜 주장하는지 모르겠어.”라는 발언을 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우리의 시선은 일반 남성인 당신을 지켜본다. 그리고 당신이 여성을 당신의 눈으로 재단하고 있는 그 순간, 우리는 우리의 시선으로, 당신을 재단한다. 이성애자밖에 존재하지 않고 욕망의 시선은 이성에 대해서 밖에 보낼 수 없는 이 “안정적인” 사회에 큰 도끼질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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